필수의료인 산부인과를 살리기 위해서는 산과 의사들이 분쟁의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
6일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안정적인 진료환경이 없는 현재, 젊은 의사들은 열악한 현실과 의료분쟁 위험으로 앞으로 필수의료 및 기피과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에서 △산과 무과실 보상금 정부가 100% 지원 △보상액 (3000만 원 제한) 증가 △불가항력 분만사고 보상 범위 광범위하게 확대 △의료사고처리특례법 통과 등을 촉구했다.
산과 무과실 보상금 정부가 100% 지원의 경우 우리나라는 '불가항력 분만사고 보상제도'를 도입하기는 했지만, 분만 과정에서 일어난 의료사고에 대해 의료진 과실이 없어도 분만의사가 그 재원의 30%를 부담하도록 강제징수하고 있다.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는 “이는 당연히 정부가 재원의 100%를 지원하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보상액 (3000만 원 제한) 증가의 경우 분만 의료사고 관련 민사소송 액수는 10억 원대에 이르고, 병원의 과실이 입증되지 않은 경우에도 환자 및 그 보호자들이 병원에 요구하는 합의 금액은 이미 수 억 원대에 달하고 있는 마당에 3000만 원은 너무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이다.
불가항력 분만사고 보상 범위 광범위하게 확대의 경우 현재 보상 범위는 산모 사망, 신생아 뇌성마비, 신생아사망, 자궁 내 태아사망 등으로 좁혀져 있다. 분만 과정 중 대량 출혈이나 혈전, 색전으로 인한 내과, 외과적 합병증 및 장애 등에 따른 보상 또한 확대하여 안전한 환경에서 산부인과 의사가 분만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 통과의 경우 현재 시행 중인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은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환자는 무조건적인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편향적 전제하에 제정된 법안이며, 중재제도 시행 후 하루 평균 2명이 의료과실에 의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가 되고 있다.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는 “의료사고가 났다고 해서 의사를 형사 처벌하는 일은 외국에서는 없다. 선의의 의료 행위를 함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날 경우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지속된다면 필수의료는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언급했다.
산부인과 살리기 해외 사례를 보면 일본은 2006년부터 2010년 사이 2100억 엔 (2조 500억 원)의 재정을 추가로 투입해 분만 비용 등을 현실화하였고 국가의 지원을 늘렸다. 정부와 병원이 분만의사에게 분만 1건당 1만 엔 (야간에는 2만 엔 추가)을 지급했고, 출산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산모들에게 분만 지원금 39만 엔 지급, 분만 시 임산부가 내는 뇌성마비 의료사고 배상 보험금(3만 엔)을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고, 뇌성마비 아이가 태어나면 보험금 3000만 엔 (3억 원)을 20년간 분할하여 지급하고 있다.
대만의 경우에도 분만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신생아 사망에 대해 약 1100만 원을 정부가 100% 지불하는 법안을 2015년에 승인하고 시행하고 있다. 분만 관련 예측할 수 없는 사고로 신생아 또는 산모에게 장애가 남은 경우 약 5300만 원, 모성 사망에 대해서는 약 7100만 원을 정부 예산으로 지급한다.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는 “분만 과정에서 발생한 나쁜 결과를 의료진 탓으로 돌리면 앞으로 산부인과를 하려는 의사는 없을 것이며, 분만 환경은 더욱 열악해질 것이 자명하다. 최선의 의료 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 가혹한 처벌 및 과도한 배상이 판결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지속된다면 필수의료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안정적인 진료환경이 없는 현재, 젊은 의사들은 열악한 현실과 의료분쟁 위험으로 앞으로 필수의료 및 기피과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례를 보면 2014년 11월 24일 오후 6시 인천 한 병원에서 불가항력적인 요인으로 태아가 사망하는 의료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인천지방법원은 2017년 4월 7일 8개월 금고형을 선고했다.
2019년 6월 27일 대구지방법원 또한 역시 불가항력적인 요인으로 산모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금고 8개월 형 판결과 함께 의사를 법정 구속했다.
2023년 3월 최근 수원고등법원은 분만 과정에서 과다 출혈 등으로 뇌 손상을 입은 산모 A 씨가 B 의료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10억 6180만 원과 2016년 2월 1일부터의 이자를 지급하라면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가 인정한 배상액과 이자를 합치면 약 15억 원에 이른다.
2014년 인천 자궁 내 태아 사망 사고가 발생, 담당 의사가 금고형을 선고받은 당시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이 50%대로 급감했다. 최근 판결 또한 결과가 안 좋았을 뿐인데, 의료진 탓으로 돌리며 배상을 판결한 것은 아주 충격적이다. 이로써 필수의료 살리기의 길은 더욱 멀어져 가는 상황이다.
저출산과 낮은 수가, 분만사고에 대한 무차별적 형사 처벌과 수억 원대에 달하는 민사 소송들로 필수의료인 산부인과의 몰락은 이미 진행된 지 오래다.
구체적으로 보면 △지난 10년 동안 인구 1000명 당 가장 낮은 전문의 증가율 △가장 높은 전문의 평균 연령 (53세) △분만이 가능한 전국 의료기관 숫자는 20년 만에 1/5로 감소 (지금은 전국적으로 180여 곳의 분만의원이 남아있음) △1년에 30-40여 곳의 분만의원이 문을 닫는 추세 △고위험 산모 증가로 분만 위험도는 점점 높아짐, 즉 민사, 형사소송 증가 등이다.
산부인과를 전공하여도 분만보다는 사고가 적은 부인과, 난임, 미용 쪽으로 진로를 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분만을 담당하지 않는 전문의는 절반에 가까운 42.4%로 조사되었고 젊을수록 그 비율은 높다. 그중 분만을 하다가 그만둔 이유로 '의료사고에 대한 우려 및 분만 관련 정신적 스트레스'(38%) 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는 “인구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산과 의사 수도 절벽이 되는 상황이다. 산과 의사의 감소는 모성 사망 증가로 이어지며 우리나라 평균 모성 사망비는 10만 명 당 12.29로 OECD 평균에 비하여 1.5배 높으며, 분만 취약지에서는 모성 사망비가 훨씬 높다”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