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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념 심층기획] ③ 의무와 처벌은 있지만, 보상은 기대하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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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념 심층기획] ③ 의무와 처벌은 있지만, 보상은 기대하지 말아야
  • 경기메디뉴스 한진희 기자
  • 승인 2023.12.0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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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관 의무는 늘어나는데, 보상·지원은 변변찮아

“휴진하고 행정업무 볼 판” 소규모 의원급 의료기관은 행정적 부담 넘어 위협 수준

날이 갈수록 의무는 늘어나는데 그에 따른 지원이나 보상은 전무하거나 있더라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그러면서 의료기관이 부여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앞뒤 따지지 않고 처벌만 강조하는 현 의료제도 역시 의사들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특히 이 같은 문제는 최소 인력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의원들에게 부담을 넘어 위협 요소로까지 작용하고 있다.

■ 마약류 취급보고 제도

대표적인 제도를 시행일 순으로 살펴보면, 먼저 2018년 5월 18일부터 ‘마약류 취급보고 제도’가 시행됐다. 마약류취급자 및 마약류취급승인자가 마약류 제조·수입·유통·사용 등 모든 취급 내역을 보고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에 따라 마약류취급자에 해당하는 의사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을 통해 마약류의 취급 내역을 보고해야 한다.

의료현장에서는 마약류의 오남용과 불법 유출을 막는 제도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단순 실수에도 냉혹한 처분이 아쉽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실제로 경기도의사회 회원민원고충처리센터에는 간호조무사가 유효기간이 지난 마약류를 신고 없이 폐기한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의사가 부랴부랴 관할 보건소에 신고했으나 5일 이내 신고 의무 위반에 해당해 업무정지 행정처분 등을 받게 됐다는 사연이 접수되기도 했다.

경기도의사회 회원민원고충처리센터는 간호조무사는 마약류취급자가 아니며, 마약류취급자인 의사는 해당 사실을 인지하고 즉시 신고한 점 등을 들어 마약류취급자의 5일 이내 신고 의무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 이 같은 내용의 의견서를 관계 기관 등이 전달해 해당 의사회원의 처벌이 완화될 수 있었다.

실수로 마약류가 파손되자 즉시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에 접속해 ‘사고류에 의한 파손’으로 전산 보고했으나 해당 지역 보건소에 별도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태료와 경찰 고발 직전까지 간 사례도 있다. 이 역시 경기도의사회의 적극적인 구제 노력으로 억울한 처벌을 면할 수 있었으나 이렇게 구제받는 케이스보다는 억울함을 느끼면서도 관계 기관의 단호하고 강압적인 기세에 눌려 부당한 행정처분을 받아들이는 의사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경기도의사회는 “고의성이 없는 단순 착오나 관리상의 실수에도 행정처분 등을 통해 전과자를 양산하는 것은 부당하다”라며 “처벌이 가볍지 않은 만큼 고의와 단순 실수 등을 구분해 그에 맞는 처분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 비급여 보고 의무화

2021년 6월 30일부터 시행 예정이었던 ‘비급여 보고 의무화 제도’도 하위법령 정비를 마치고 지난 9월 4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병원급 의료기관은 당장 올해 9월 진료분부터 비급여 보고 의무가 생겼다. 병원급 의료기관은 연 2회, 3월과 9월분 비급여 진료내역을 보고해야 하며, 의원급 의료기관은 내년 3월 진료분부터 연 1회 보고해야 한다.

올해는 비급여 항목의 비용, 진료 건수, 진료 대상이 된 질환, 주 수술 및 시술의 명칭 등 그나마 보고해야 할 항목이 594개에 그치지만, 내년에는 보고 항목이 대폭 늘어나 무려 1,017개 항목에 대한 보고 의무가 생긴다.

당초 의료계에서는 비급여 보고 의무화 제도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며 강력하게 반대해 왔다. 의료기관에 무리한 행정적 부담을 떠넘기고 환자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요구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배포한 ‘비급여 진료비용 등의 보고 서식 작성 요령 및 예시’ 문서를 보면 ‘무리한 행정적 부담’이라는 표현이 결코 부풀려진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문서에 따르면 각각의 환자에 대해 최대 20자리에 이르는 일련번호를 부여하고, 개인정보 및 보험의 종별, 진료과목 코드, 입원 및 외래 구분, 입원 기간 등 비급여와는 무관한 의료 정보까지 기재해야 한다. 보고 분야, 표준코드, 의료기관별 사용 코드, 항목 구분, 코드 구분, 단가, 실시 빈도, 비용, 상병명, 주 수술 및 시술명 등 10여 개 항목에 이르는 비급여 내역도 기재해야 한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큰 병원이야 행정직원이 따로 있을 테니 그나마 부담이 덜하겠지만 개원가 대부분은 의사 한 명에 최소한의 의료인력으로 꾸려가는 상황이라 행정업무가 추가될수록 부담이 크다”라며 “행정업무를 위해 직원을 추가로 채용하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정부는 의무만 강요하며, 의료현장의 막막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개원의는 “1인 의원은 비급여 보고 기간에 문서 작업하느라 진료에도 차질이 생길 것 같다”라며 “국가가 개인 사업자에게 요구하기에는 과도한 행정적 작업이자 부당하고 행정편의주의적인 제도”라고 강조했다.

■ 수술실 CCTV 의무화

올해 9월 25일부터 시행된 수술실 CCTV 의무화도 실효성 논란이 분분하지만, 수술실을 갖춘 의료기관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야만 하는 실정이다. 올 10월 기준 전국 수술실 CCTV 설치 의무 대상 의료기관은 2,369개 소에 달한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수술실 CCTV 설치 지원 예산으로 37억 7,000만 원을 책정했으며, 대상 의료기관이 CCTV를 설치할 경우 설치비의 50%를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설치비의 절반만 지원할 뿐 이후 유지보수비는 오롯이 의료기관의 몫이다. 유지보수 업체와 수술실 규모별 차이는 있지만 수술실 CCTV 유지보수를 위해 매월 내야 하는 비용도 수십만 원이다.

수술실 CCTV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도 부담이지만, CCTV 설치·운영이나 안전관리 기준이 모호해 혹시 나도 모르게 「의료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의료진의 근로 감시 등에 따른 인권 침해 우려, 의료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 불필요한 소송 및 의료분쟁 가능성 등도 의사들을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다. 수술이 많은 외과나 흉부외과 등의 진료과목에서는 혹시 모를 분쟁을 피하기 위해 소극적·방어적 수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한탄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수술실 CCTV 설치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며 “기본권 침해는 물론 외과의사 기피로 필수의료 붕괴를 앞당기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대리수술 등이 논란이 됐으면 문제가 된 병원이나 의사를 강력하게 처벌해야지, 성급한 일반화로 모든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게 한 것은 의료기관에 경제적·심리적 부담은 물론 세금 낭비”라고 꼬집었다.

■ 실손보험 의료기관 청구대행 의무화

보험업법 개정에 따라 오는 2024년 10월부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시행된다. 실손의료보험 가입자의 요청에 따라 의료기관이 실손보험금 청구 서류를 중계기관에 전송하면 보험사로 전달되는 방식이다.

대외적으로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로 불리지만,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간소화가 아니라 오히려 전에 없던 행정업무를 떠맡게 생겼으니 ‘실손보험 의료기관 청구대행 의무화’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실손보험 의료기관 청구대행 의무화’는 개인정보 유출 및 악용을 막고 실손의료보험 보험금 청구 절차 간소화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실손보험금 청구 당사자인 환자들로부터도 큰 공감을 사진 못하고 있다.

한 시민은 “보험회사가 요구하는 서류를 개인이 직접 보험회사로 전송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데 굳이 중계기관을 거쳐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이 과정에서 민감한 진료기록 등 개인정보가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든다”라고 말했다.

가장 큰 수혜를 보는 것은 민간 보험사라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1차적으로 실손보험금 청구 서류 확인 작업에 필요한 인력 등 각종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민간 보험사가 취할 가장 큰 이득은 전자화된 방대한 개인의료정보를 합법적으로 취득하고 축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수익성을 위한 보험상품 개발·판매는 물론 최악의 상황은 보험금 지급 거절, 갱신 거절, 신규 보험 가입 거절 등의 횡포를 부릴 우려도 있다.

이로 인해 행정업무가 더 늘어나게 될 의료기관에서는 “실손의료보험은 보험사와 개인 간 사적 계약인데 계약과는 무관한 의료기관에 불필요한 행정부담을 전가하려 한다”라며 “별도의 행정직원을 둘 여력이 없는 의원급 의료기관에 실손보험금 청구대행 업무까지 떠넘기고 민간 보험사는 손쉽게 환자의 진료기록을 취득하도록 만든 법”이라고 비판했다.

의료계 인사는 “날이 갈수록 규제와 의무가 늘어나고 수시로 해야 하는 행정업무도 늘어나는데, 그에 합당한 보상은커녕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며 엄포를 놓는 정부의 태도에 숨이 막힌다”라며 “진료보다는 행정업무에 집중하느라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벌어질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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