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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적이라는 정부 말 믿고 따랐는데, 전화상담 고착화 작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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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적이라는 정부 말 믿고 따랐는데, 전화상담 고착화 작업 중?
  • 경기메디뉴스 한진희 기자
  • 승인 2020.05.0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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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의연, 전화상담 고착화·원격진료 제도화는 일차의료체계 붕괴 부추겨
의·병·정 간담회서 의협회장은 전화상담 수용했나 입장 밝혀야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 경기메디뉴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 경기메디뉴스

지난 2월 21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중앙사고수습본부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2월 24일부터 의료기관의 전화상담 처방을 한시적으로 허용한다고 밝힌 가운데, 올바른 의료 제도·정책 제시를 표방하는 의료계 단체인 바른의료연구소(이하 바의연)는 전화상담 고착화와 원격진료 제도화는 일차의료체계의 붕괴를 부추겨 코로나19 2차 유행 극복을 더욱더 어렵게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가 내놓은 ‘전화상담 처방 및 대리처방 한시적 허용방안’은 국민이 의료기관을 이용하면서 감염되는 것을 방지해 지역사회 확산을 막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그러나 의료계는 전화를 이용한 원격진료를 사실상 허용한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와 의료인 간 원격의료는 합법이지만,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는 불법이다.

이에 대해 이 방안을 설계한 보건복지부 공무원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원격의료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 사항을 잘 알고 있다. 원격의료로 가기 위해 해당 조치가 절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의료계에서 알아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바의연은 이 말은 허언이 되고 있다며 반박했다. 바의연은 “지난 4월 14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비대면 의료서비스 등 디지털 기반의 비대면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힌 이후, 여러 부처에서 원격의료 추진방안을 내놓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원격의료, 원격교육 등 비대면 사업의 규제 혁파와 산업육성에 각별히 역점을 둬 나가겠다”고 밝혔으며,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원격진료 시대의 도래를 막을 수 없다. 앞으로 원격진료에 있어 규제를 얼마나 풀고 의료기기 산업과 연결시키느냐가 또 하나의 문제”라고 발언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 차관 역시 4월 29일 “충분한 논의와 의견수렴을 전제로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을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바의연은 “결국 전화상담의 한시적 허용이 원격진료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의료계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정부는 5월 4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시적인 전화상담 및 처방에 대해 5월 초부터 의원급 의료기관은 기존 진찰료 100% 외에 전화상담 관리료 30%를 별도 수가로 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바의연은 “대면진료보다 더 높은 수가를 책정해 한시적 허용을 상시적 허용으로 고착화시킨 것”이라며 “정부는 전화상담 허용이 한시적 조치로서 종료 시기는 코로나19 전파양상을 봐가며 결정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코로나19 확산세가 미미해진 시점에서 이 조치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 것은 결국 원격진료 강행을 염두에 둔 결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사태에서 전화상담 조치가 원격진료 시행의 정당성을 부여했는지, 이 같은 조치로 원격진료의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됐는지 의문을 표시했다.

김강립 차관은 한시적으로 시행된 전화상담과 처방이 코로나19 감염 위험으로부터 의료기관 보호, 만성질환자 보호, 비코로나19 환자 의료 이용 보장 등 3가지의 효과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바의연은 “이 같은 효과를 제대로 확인하려면, 전화상담군과 대조군의 코로나19 감염률을 비교 조사해야 하는데 그런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또한, 바의연은 “이번 국내 코로나19 사태에서는 주로 지역사회 감염과 의료기관 입원 환자를 통한 집단감염이 문제가 됐을 뿐, 의료기관 외래 진료 후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례는 단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다”면서 “이는 전화상담이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줄인다는 정부 주장에 근거가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 24일부터 4월 19일까지 전화상담과 처방을 통해 13만 건 정도의 원격진료가 이뤄졌으며, 별다른 오진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는 발표에 대해서도 바의연은 “정부가 오진 사례를 조사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며 “정부가 제시한 근거 자료는 오로지 일정 기간 전화상담을 시행한 총 의료기관 및 시행 건수밖에 없다. 전화상담 및 처방의 효과와 안전성은 전혀 입증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폭발적인 전파양상을 보인 대구지역이나 코로나19 확진으로 폐쇄된 의료기관 같은 경우는 전화상담 및 처방이 일부 도움이 됐을 것”이라며 “그러나 이 사실이 한시적 전화상담 조치가 고착화되고 원격진료를 도입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맞섰다.

정부의 방침대로 전화상담이 고착화되거나 원격진료가 제도화될 경우 일어날 부작용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바의연은 “의료의 근본 원칙은 대면진료이다. 대면진료는 문진, 시진, 청진, 타진, 촉진 등을 동원해 면밀히 진찰하고, 필요하면 바로 검사를 시행할 수 있어 제대로 된 진단 가능성을 높이고 오진의 위험성을 낮출 수 있다”며 “전화상담은 문진 이외에 다른 진찰 방법을 동원할 수 없어 오진의 위험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 화상진료와 원격모니터링을 이용한 원격진료도 대면진료를 완벽하게 대체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바의연은 “원격진료는 영토가 넓고 인구밀도가 낮아 의료접근성이 매우 떨어지거나 의료 수가가 비싼 나라에서 일부 효용성이 있을 것”이라며 “엎드리면 코 닿는 곳에 의원들이 줄줄이 위치하고 진료비도 싼 한국에서 원격진료의 효용성은 매우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세계에서 원격진료가 가장 활성화된 미국도 코로나19 대유행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보면 원격진료가 팬데믹 감염병 유행에 별 효과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며 “오히려 국내 코로나19 사태를 보면 지역마다 촘촘히 위치한 동네 의원들이 의료역량 과부하를 막는 완충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바의연은 전화상담 및 원격진료가 일차의료기관의 도산을 부추길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바의연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이미 환자 수가 대폭 감소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거나 적자를 감수하고 있는 일차의료기관들이 대부분”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전화상담이나 원격진료가 활성화된다면, 전화상담 수가가 일반 수가보다 높다 하더라도 총진료환자 수가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또, 전담인력을 두고 전화상담이나 원격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료기관들로 환자 쏠림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나머지 의원들은 폐업으로 내몰릴 테고, 향후 2차 유행 시 완충작용을 할 의원들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바의연은 “결국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의료기관과 의료인을 감염으로부터 보호하고 환자 진료에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추진한 의료이용체계 개선방안이 오히려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조장하게 될 것”이라면서 “정부는 일차의료체계가 붕괴된 후에도 전화상담이나 원격진료만으로 코로나19 재확산 사태를 극복해낼 수 있다고 믿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의료계는 한시적 허용이라는 정부의 말을 믿고 따랐으나 결국 정부가 의료계를 속이고 우롱한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정부는 이 조치가 의료전달체계의 핵심인 일차의료기관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지 않고, 오로지 경제와 산업의 차원에서만 접근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한국 일차의료체계는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정부가 전화상담 고착화, 호흡기전담클리닉 등 코로나19 장기화에 대비한 의료이용체계 개선방안 발표에 앞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 정영호 대한병원협회장과 의·병·정 간담회를 통해 의료계 의견을 청취하고 지원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밝힌 것과 관련, 의협회장이 원격진료 도입의 발판이 될 전화상담 고착화를 수용한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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