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직업이든 위험요소가 적고 책임에 따른 법적인 처벌이 최소화되면서 여유 있게 일을 하면서 돈은 많이 벌기를 원한다.
그런 관점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어떨까?
1977년에 만들어진 의료보험제도는 북한의 무상의료에 대항하여 만들어졌고, 그러나 아직 그 당시는 한국의 경제여건이 어려웠기에 수가를 낮게 책정했고 이후 수가의 인상은 국민을 의식해야 하는 정부입장에서 물가인상수준에 훨씬 못 미쳤다.
그런 과정에서 대학병원의 규모와 수준을 능가하는 대형병원들이 대기업의 자본으로 만들어졌고, 환자들은 조금만 위험한 병이라고 생각하면 대형병원을 선호하였다.
또한, 낮은 수가를 보전하기 위해 더 많은 환자를 보고 더 많은 수술을 해야 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의 전공의들을 더 많이 채용할 수밖에 없었다.
개원가도 다를 바가 없었다. 수가를 보전하기 위해 더 많이 일을 해야 했고, 야간근무나 휴일근무를 하는 병원도 많아졌다. 게다가 비급여 항목을 개발하여 병원매출을 올리려고 노력해야만 했다. 사실 국민들이 급여와 비급여의 차이에 대해 헤깔려하는데 급여이외의 환자가 100% 부담하는 것이 비급여는 아니며 국가에서 인정하는 것만 해당이 되고 그 외에는 성형수술 등만 인정이 된다. 그리고 병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병원의 환자가 줄면 주말에도 학회를 기웃거리고 새로운 의술을 배우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다반사였다.
또 하나의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교통이 발달하고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에 들면서 지방의 인구가 오히려 감소하였고, 그만큼 환자가 줄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대형병원 선호의식 때문에 지역병원은 폐업하는 경우가 늘었고, 대부분의 병의원들은 대도시로 몰려들었다. 환자들도 편리해진 교통편을 이용해 오히려 소위 빅5병원에 가는 비율이 높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큰 사건이 터졌다. 2018년 이대목동병원 소아과교수 구속사건이다. 노동집약적이면서 리스크가 높은 소아중환자실의 치료과정에서 신생아 사망에 대하여 치료행위에서 문제가 없었는지를 사법부가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무죄로 풀려났지만, 필수 바이탈과는 이제 사법적 리스크까지 짊어져야 하는 과로 전락해버렸고 소아과를 비롯한 필수과의 지원율은 급락하였다.
대한민국의 의사는 고질적인 저수가와 사법리스크, 과도한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느 나라도 따라할 수 없는 대한민국만의 최고의 의료시스템을 만들어왔다. 편안하게 하루에 5명내외를 보면서 충분한 월급을 받는 준공무원 형태의 선진국 의료시스템과는 다르다.
특히 개원가의 의사들은 의대등록금이나 병원개설과정에 정부가 도와준 것은 일도 없으며 오히려 많은 돈을 들여 개원을 한 후 어렵게 생존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게 현실이다. 개원만 하면 무조건 돈을 번다는 공식은 이제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얘기지만 일전에 캄보디아 의료봉사를 다녀왔는데 1975년도에 폴포트라는 지극히 이상주의적인 공산주의자가 정권을 잡으면서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포퓰리즘을 이용해 감금 고문 후 킬링필드라 불리는 곳에서 대량 학살을 자행하였고 전 인구의 4분지 1이 사망하였다. 그 결과 교육도 붕괴되었고 지식산업 등도 붕괴되면서 지금의 50~60대 지도자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은 채 캄보디아를 이끌고 있다. 잘못된 지도자의 무지몽매한 정책이 가져다준 크나큰 비극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타버린 들판에 새싹이 돋듯이 지금의 젊은이들은 새로운 문물을 배우고 미래의 캄보디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들의 열정과 의사들의 봉사정신으로 캄보디아를 깨우는데 일조하고 있다. 어느 나라도 이렇게 캄보디아의 국민들을 위해 직접 헌신하진 않는다는 게 현지 선교사님의 말씀이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점은 전문직을 무시하고 배척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환자를 치료하기 전에 과학자이며 데이터를 기본으로 하여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직업군이다. 지금 정부가 내세우는 2000명 의대증원은 잘못된 데이터와 잘못된 해석으로 나온 잘못된 정책이라고 의사들은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필수과와 지방의료의 붕괴를 막고 더 나은 의료시스템을 만들어갈지 항상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와 언제든지 손잡고 더 나은 미래의 의료를 만드는데 앞장 설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일방적으로 과학적 근거 없이 직접 환자를 치료하고 느끼는 의료현실을 외면한 채 의사는 항상 정부의 의료정책을 방해하고 밥그릇이나 챙기는 직업군이라고 비하하면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은 더욱 더 붕괴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 정도가 아니라 과연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면서 시장경제 국가인지 의심할 정도로 의사들의 의무만 강요한 채 권익을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권을 무시하고 인격을 모독하고 있다. 우리에게 자유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으며 의료 수급권자로서 시장경제의 논리마저 부정하고 무조건 정부의 정책에 협조해야 하는 노예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부분 의사들은 어려운 역경을 딛고 지금까지 세계 최고의 의료시스템을 이끌어 온 것은 우연이 아니며 모두가 맡은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왔고 사명감을 갖고 의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며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의사들이 이제는 개혁의 대상이 되고 공공의 적이 되어 가고 있다. 모두가 의대를 선망하면서도 의사를 욕하고 집단이기주의로 몰아가고 있으며 정부는 이에 편승하여 포퓰리즘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의사의 프라이드가 무너지고 그동안 노력한 댓가를 무시당하며 특히 전문가로서의 과학적인 데이터를 제공하여 의료의 난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마저도 무시당하는 현실에 정말 의사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하물며 앞으로 전문의자격증을 따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 전공의들의 심정은 더 괴롭고 힘들 것이다.
환자 곁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의사는 한명도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정책을 정부의 협박이 무서워서 그냥 받아들인다면 더 많은 환자들이 죽어갈 것을 알기에 더 많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저항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의사들의 항변을 뒤로한 채, 공권력을 남용하고 국민들을 기만하고 이용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을 것이며, 국민들은 나중에서야 속은 걸 알고 후회해야 이미 무너져버린 의료를 살릴 수는 없다.
이제 정부에 묻고 싶다. 의사들의 협력 없이 공권력을 이용해 터무니없는 의료정책을 밀어 부쳐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정부가 만든 이 정책이 옳다고 확신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도 의사이기 전에 국민으로서 세금도 내고 맡은 바 의무를 다하는 국민들 중 한사람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가?
지금이라도 잘못된 정책을 인정하고 의사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정말 대한민국이 더 멋진 의료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는데 노력하겠다고 한다면 지금의 정부가 의료대란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만약 의사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본인들이 원하는 정책을 강요한다면 이에 따른 책임은 현 정부에 있음을 경고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