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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머리 맞댄 ‘응급의료 긴급대책’ 살펴봤더니 “의료인이 경증 환자 내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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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머리 맞댄 ‘응급의료 긴급대책’ 살펴봤더니 “의료인이 경증 환자 내쫓아라”
  • 경기메디뉴스 한진희 기자
  • 승인 2023.06.0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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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의연, “경증 환자 응급의료기관 이용 제한은 정부 몫, 의료진에 떠넘기지 말아야”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 경기메디뉴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 경기메디뉴스

지난 5월 31일, 국민의힘 지도부와 정부는 응급의료 긴급대책 논의를 위한 당정협의회를 열고 지역응급의료상황실 운영 및 이를 통한 이송 환자 의무 수용 등의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소식을 접한 의료계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근본적인 응급의료 이용 행태와 시스템의 개선 없이 의료진에게 책임과 부담만 전가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바른의료연구소(이하 바의연)는 성명을 통해 “현장의 의견을 무시한 정부와 정치인들의 탁상행정으로 인해 대한민국 응급의료는 회생 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정은 응급의료 긴급대책 당정협의회에서 권역응급의료센터의 경증 환자 진료를 제한하고, 응급환자 진료 전 중증도를 분류해 경증은 수용하지 않고 하위 종별 응급의료기관으로 분산하는 것을 의무화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병상이 없는 경우 경증 환자를 내보내 응급환자 병상을 확보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바의연은 “대한응급의학의사회에서는 경증 환자의 과밀 등 비정상적인 응급실 이용 행태의 개선과 근본적인 응급의료 시스템의 개선을 촉구했지만, 당정 협의 결과는 단순히 이송 환자에 대한 의무 수용과 경증 환자 수용 거부를 대책으로 내놓았다”라며 “특히 병상을 차지하고 있던 경증 환자를 응급진료구역에서 내보내고 중증 이송 환자를 수용하라는 것은, 힘들게 응급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공권력도 없는 의료진에게 환자를 내쫓는 업무까지 전가함으로써 중증 환자 수용 불가 문제를 해소하려는 어이없는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아파서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 입장에서도 다른 중증 환자가 오고 있어 진료를 중단할 테니 나가달라는 요구를 받으면 당연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과밀화된 응급실에서 장시간 대기하다 겨우 병상을 배정받고 치료받는 중인데, 강제 퇴원 조치를 받으면 어느 환자가 동의하겠는가?”라며 “결국 이 대책이 현장에 적용되면, 환자를 내보내려는 의료진과 강제 퇴원을 거부하는 환자 및 보호자 사이에 격렬한 대립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폭언 및 폭행이 발생하고 고발 및 소송 사례가 증가할 것”이라며 “이러한 분쟁과 대립은 응급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에게는 또 다른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해 응급의료 의료진의 이탈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또 다른 문제는 환자에게 적절한 의료를 제공할 수 없는 상태, 즉 환자의 질환을 적절히 치료하기 위한 배후 진료가 불가능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응급의료상황실에서 강제로 이송한 환자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바의연은 “현재 법제처의 규제심사 중인 일명 ‘응급환자 수용의무화법(응급의료법 개정안)’이 제정되면, 응급의료기관은 정당한 사유 없이 환자 수용을 거부 또는 기피할 수 없으며, 이를 거부할 경우 당직의사에게 징역 3년 이하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라며 “해당 법안의 문제는 중증 응급환자의 수용 가능 여부를 확인해 가능한 응급의료기관으로 이송하되, 만일 수용 가능한 기관이 없는 경우 일방적으로 지역응급의료상황실(가칭)에서 수용기관을 지정할 수 있는 것인데, 이렇게 이송된 중증 응급환자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분쟁에 대한 면책 조항은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송에 대한 부담과 치료 결과에 대한 부담감, 여러 가지 행정적인 업무 증가 등으로 인해 점점 응급의료 종사자들이 응급의료 현장을 떠나고 있는 상황에서, 강제 이송 환자에 대한 면책조차 보장되지 않은 채 이러한 대책을 내놓은 것은 대한민국 응급의료에 사망 선고를 내린 것과 다름없다”라고 못 박았다.

바의연은 현 응급의료 이용 행태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당정은 경증 환자의 이송을 지역응급의료센터로만 하도록 제한하겠다고 했지만, 대부분의 경증 환자는 이송을 통해서가 아닌 스스로 방문하기 때문이다. 바의연은 “경증 환자의 응급의료기관 이용 제한은 오로지 정부만이 제도적 정비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당과 정부는 의료기관에 책임을 떠넘겨 현장 상황을 악화시키는 어이없는 탁상행정으로 그 무능함을 드러내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불편함을 감수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일은 응급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진의 일이 아니다”라며 “응급의료가 바로 서려면 응급의료를 이용하는 국민들이 스스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고, 국민들에게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은 마땅히 정부가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 “이번 당정 협의 결과와 같이 정부와 정치인들이 그 책임을 의료진들에게 떠넘기는 탁상행정이 지속되면, 제때 응급의료를 받지 못해 생명을 잃는 국민은 더 많아질 수밖에 없고, 결국 대한민국에는 응급실이라는 공간이 사라지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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