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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권익 찾겠다더니… 정치적 거래로 얼룩진 ‘9.2 노정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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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권익 찾겠다더니… 정치적 거래로 얼룩진 ‘9.2 노정합의’
  • 경기메디뉴스 한진희 기자
  • 승인 2021.09.0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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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의협, “노정 합의안 살펴보니 노조원 이득 없는 정치적 거래 투성이”
의료계 의사노조 결성 및 조직화 집중해야 할 때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 경기메디뉴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 경기메디뉴스

지난 2일 새벽, 보건의료노조와 정부가 극적으로 합의에 성공, 파업 없이 정상적으로 업무에 복귀한 가운데, 대한병원의사협의회(이하 병의협)가 이번 합의는 의료 정상화나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는 무관한 정치적 거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8월 17일 쟁의 조정 신청을 하고 18일부터 26일까지 파업 찬반 투표를 거쳐 찬성률 89.76%로 파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료인력 확충과 공공의료 확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요구 조건을 정부에 제시했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정부와 협상을 벌이다 9월 2일 새벽 극적 협상 타결 소식을 알렸다.

이에 대해 병의협은 “노조와 정부가 협상을 통해 파업을 막은 것은 결과적으로 환영받을 일”이라면서도 “그런데 기존 다른 직역의 노조들이 노동자의 권익 보호 및 처우 개선이라는 노조 본연의 요구를 중점적으로 했던 반면 이번 보건의료노조의 요구안에는 마치 정부나 일부 정치인들이 원하는 듯한 내용이 상당수 포함돼 있고, 이러한 내용이 노조와 정부가 발표한 합의안에도 고스란히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보건의료노조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공공의전원 설립이나 지역 의사제 추진 등의 내용이 합의문에 포함된 것은 의료계의 입장에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합의문 내용을 분석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노조와 정부 사이의 정치적 거래로 인해 국민과 전체 보건의료계가 입게 될 피해에 대해 알리겠다”고 밝혔다.

먼저,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가 합의한 내용에 포함된 공공의료 확충 관련 내용은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 보건복지부가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을 발표할 당시 바른의료연구소 등 의료계에서 이 계획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으나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의 핵심 내용이 이번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 사이에서 만들어진 합의안에 고스란히 포함됐다는 것.

병의협은 “정부가 이미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으로 6월에 발표한 내용을 왜 보건의료노조가 파업까지 불사하는 투쟁의 요구안에 포함시켜 합의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며 “보건의료노조는 보건의료 노동자의 처우 개선과 인력 확충 방안만을 주장하면 되는 것인데, 굳이 정부가 원하는 내용까지 요구해서 합의안에 포함시킨 것은 정치적인 거래의 목적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이번 보건의료노조 파업 투쟁을 통해 기존 공공보건의료 정책 추진의 명분을 얻고, 보건의료노조는 처우 개선 및 공공의료 분야에서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 명분을 얻은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문제는 정부와 보건의료노조의 이러한 정치적 거래로 피해를 입는 것은 선량한 국민과 대다수의 의사 및 보건의료 종사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보건의료노조는 보건의료 정책, 의료기관 경영 등을 포함한 전체 보건의료 영역으로 노조의 지배력을 넓히기 위해 공공의료 확충을 주장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실제로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의 합의안에는 노조가 공공의료 관련 정책이나 병원 경영 등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근거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병의협은 “합의안에 포함된 공공병원 확충 및 강화 방안에는 기존에 확정 및 발표한 대책 외에 추가 필요 사안에 대해서는 보건의료노조가 참여하는 ‘(가칭)공공의료 확충 및 강화 추진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한다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며 “공공병원 신축 및 증축 과정에 노조가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으로, 이는 공공병원 설립 과정에서 노동자의 권익 보호라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만, 비효율적인 의료기관 운영으로 이어지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사립대 병원 및 민간 중소병원의 공공적 역할과 기능 강화 독려 △공익 참여형 의료법인 제도화를 통해 사립 의료기관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방안 마련 추진 등도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에서 밝힌 민간 의료기관에 대한 관치의료 시스템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재확인한 것이며, 공익 참여형 의료법인 제도화를 통해 민간 의료기관의 경영에까지 노조가 공익 대표로 참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이 병의협의 분석이다.

또, 기존에 정부 부처와 전문가 단체들로만 구성하기로 돼 있었던 공공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와 시도 공공보건의료위원회에 노동자 단체가 참여하도록 명문화해 공공보건의료 정책 결정에 노조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도 했다.

여기에 의사노조도 없는 보건의료노조가 공공의전원 설립, 지역 의사제 도입, 의료인 결격사유 확대 등의 정책을 요구한 것은 의료계를 적으로 돌리는 행위이자 이번 합의가 정부와의 정치적 거래임을 자인하는 증거라고 못 박았다. 병의협은 “의사 인력 증원 정책 관련 내용은 의정합의 사안이므로 이를 노조와 정부의 노정 합의안에 포함시킨 것은 정부가 의정합의 파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보건의료노조는 공공의전원 설립과 지역 의사제와 같은 의사 인력 확대 정책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책은 합의안에서 쏙 빼놨다”며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에 포함됐던 지역 간호사제와 관련된 내용은 합의안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병의협은 “지방에서는 의사보다 간호사 구하기가 더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간호 인력 부족이 심각한 수준이지만, 노조는 지역 의사제를 주장하면서도 지역 간호사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단순히 인력 배출만 늘려서는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노조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사실상 개인의 거주 이전과 직업 선택의 자유를 박탈하는 위헌적인 정책인 지역 간호사제를 간호사들이 극렬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보건의료노조가 의료인 결격사유 확대를 주장해 이를 합의안에 포함시킨 점도 지적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의료인 면허취소 강화법은 중범죄나 의료 관련 범죄에 의한 처벌이 아니어도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시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실수로 교통사고가 발생해도 의료인의 면허가 취소될 수 있는 등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고, 정부의 의료계 탄압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런데 전체 의료인이 다 포함되는 이 법안에 보건의료노조가 동의한 것. 병의협은 “정치적 거래를 위해서 자신들의 노조원을 정부에 팔아넘긴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아울러 보건의료노조와 정부는 불법 의료행위 근절을 핑계로 무면허 의료인력(UA)에 의한 불법 의료행위를 무리하게 합법화시키고, 의료인 면허 범위를 재조정하려는 의도까지 내비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병의협은 “현재 대부분의 UA들이 불법 의료행위인 것을 알면서도 개인적 또는 경제적인 이유 등을 핑계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도 노조는 UA들에 대한 처벌 내용은 제외하고 불법 의료행위 지시 사례에 대한 처벌 강화만을 주문하고 있다”면서 “노조의 이러한 요구의 기저에는 불법 의료행위의 양성화 및 합법화를 통해 의료인 면허 범위를 재조정하겠다는 의지가 숨어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보건의료노조가 정말로 불법 의료행위 근절을 원한다면, 그동안 불법 행위를 눈감아 주고 있던 보건복지부에 강하고 원칙적인 대응을 주문하고, 불법 행위를 수행하는 UA와 이를 지시하는 병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달라고 요구했어야 한다”며 “노조에 소속된 UA들부터 불법 의료행위 거부 투쟁을 전개하고, 만약 불법 의료행위를 지시하는 병원이 있다면 적극 고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조는 UA 불법 의료행위 근절보다는 현재 의사들의 역할로 규정된 대부분의 의료행위 중 진료지원 직역 별로 각각 가져오고 싶은 의료행위만을 취사선택해 업무 범위를 재정립하고, 이를 통해 각 진료지원 인력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며 “의료행위에 대한 책임은 의사들에게 떠넘기고 의료행위의 권한만을 얻기 위해 의료인 업무 범위를 재조정하자고 요구하는 것 아니냐”고 맞섰다.

병의협은 “결국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 간의 9.2 노정합의는 의료 정상화나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는 무관한 정치적 거래에 불과하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며 “저수가와 당연지정제 등 대한민국 의료 왜곡의 핵심 문제들은 외면하고, 공공이라는 이름을 빌려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포퓰리즘 정책만 양산하며, 의료계를 공격해 자신들의 이익만 취하려는 보건의료노조와 정부의 파렴치한 행태는 규탄받아 마땅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보건의료노조와 정부가 발표한 노정 합의안은 국민과 의료계뿐만 아니라 보건의료노조의 노조원들에게도 어떠한 이득이 없는 정치적 거래의 산물이며, 오히려 피해와 부작용만 양산할 것이 자명해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지난해 의료계 단체행동의 실패를 통해 의료계 내부에서도 합법적인 파업이 가능한 노조 결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며 “특히 앞으로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정책과 법안이 실행되면, 노조를 통한 투쟁 외에는 어떠한 저항 방법도 없어지는 만큼 지금부터라도 의협을 비롯한 전 의료계는 의사노조 결성 및 조직화에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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