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음 해외 의료봉사를 기다리게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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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다음 해외 의료봉사를 기다리게 되는 이유
  • 원영석 경기도의료봉사단 인솔단장(경기도의사회 기획이사 겸 사업이사)
  • 승인 2019.10.22 1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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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료봉사단 해외 의료봉사서 만난 필리핀 아이타족 초청부터 치료까지
경기도의료봉사단이 필리핀 출국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경기도의사회
경기도의료봉사단이 필리핀 출국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경기도의사회

경기도의사회는 지난 7월 9일부터 14일까지 해외 의료봉사를 실시했다. 경기도의사회가 주축이 된 경기도의료봉사단의 해외 의료봉사는 어느덧 10년째 연례행사처럼 이어져 오고 있다. 올해 나는 경기도의료봉사단을 이끄는 인솔단장이 되어 막중한 책임감과 함께 출국길에 올랐다.

필리핀 팜팡가주에 도착해 여러 환자를 돌보느라 5박 6일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의료봉사 마지막 날이 되었다. 이날은 필리핀 원주민인 아이타족 마을에서 의료봉사를 하기로 했다. 아이타족은 말레이족이 배를 타고 필리핀에 들어오면서 소수민족으로 전락해 지금은 주로 산간지역에 대나무 집을 짓고 살면서 가축을 키우거나 작은 농사를 지으며 어렵게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필리핀 아이타족 마을에서 남학생을 진료하는 모습. ⓒ 경기도의사회
필리핀 아이타족 마을에서 남학생을 진료하는 모습. ⓒ 경기도의사회

아이타족 마을에서 진료하던 중 한 남학생이 고통을 호소하면서 찾아왔다. 이동용 초음파로 확인해보니 옆구리 깊은 곳에 큰 혹이 보였다. 진물이 흐르고 통증도 심한 모습이었다. 당장 치료할 장비가 없어서 간단히 소독만 한 뒤, 한국으로 후송해 치료를 받을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경기도의사회는 해외 의료봉사 활동 과정에서 한국으로 후송해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발생할 경우,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에 도움을 청하기로 업무협약이 돼 있다. 지난해에는 난소암 환자를 한국으로 초청해 치료하려고 했으나 이미 말기로 진행돼 안타깝게 도움을 줄 수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아이타족 남학생의 상태를 성빈센트병원에 전달했고 흔쾌히 무료로 치료해주겠다는 회신이 왔다. 마음이 급해졌다. 현지 선교사와 포락시청의 도움으로 남학생의 출생증명서와 여권을 만들었다. 또, 지난해와 같은 안타까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현지에서 CT 촬영을 하고 기본적인 영상진단을 진행했다. 다행히도 암은 아니었다. 대요근 중심부에 농양이 생긴 것으로, 한국에서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병이었다.

한국대사관에 협조공문을 보내 하루빨리 비자가 나올 수 있도록 서두른 결과 지난 9월 30일 아침, 포락시청에서 파견한 인솔자와 남학생,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아이타족은 ‘잠발어’라는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한다. 포락시청은 아이타족 모자와 의료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잠발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솔자를 15일간의 유급휴가 형식으로 함께 보내주었다. 고마운 배려였다.

필리핀 아이타족 남학생의 치료를 지원한 성빈센트병원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경기도의사회
필리핀 아이타족 남학생의 치료를 지원한 성빈센트병원 관계자들과 아이타족 모자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경기도의사회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각종 검사가 이뤄졌고, 이번 치료를 기획한 이사로서 나는 나대로 분주한 시간이었다. 먼저 주치의인 김일섭 교수님을 만나 앞으로의 치료 계획에 대해 상담했다. 김 교수님은 결핵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고, 정밀검사에서 결핵 진단이 나왔다. 바로 격리병동으로 옮겨 결핵 치료를 하면서 농양 부위에 삽관했는데 엄청난 양의 결핵성 농양이 관을 타고 나왔다. 이후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대부분 농양이 소실됐고 2주간 격리 후 퇴원이 가능하다고 해 10월 16일에야 퇴원할 수 있었다.

경기도의사회의 세심한 배려는 치료 기간 내내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첫날의 검사는 자정까지 진행됐는데, 의사회 사무처 직원들이 그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후에도 매일 병원을 찾아 식사는 잘하는지, 불편한 곳은 없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타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까 걱정하며 중간중간 치킨이나 삶은 달걀 등 간식거리를 사다 날랐다. 다행히도 남학생은 농양이 거의 없어지면서 통증도 나아지고 입맛도 되찾아 식사를 잘할 수 있게 됐다.

모자의 인솔자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한국에 도착한 뒤 감기몸살로 고생하는 인솔자를 위해 영양수액 링거주사를 맞을 수 있도록 도왔고, 당초 예상보다 치료가 길어지면서 포락시청이 인솔자에게 준 유급휴가일을 초과하게 되자 초과분에 대해서는 경기도의사회에서 급여를 부담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가장 힘들어했던 사람은 고국에 어린아이들을 두고 온 남학생의 어머니였다. 낯선 나라에서 치료 중인 아픈 아들 걱정, 고국에 두고 온 젖먹이 걱정에 어머니는 자주 눈물을 훔쳤고 그럴 때마다 사무처장님은 마음으로 위로를 건넸다.

경기도의사회 이동욱 회장이 남학생이 입원 중인 병실을 찾았다. ⓒ 경기도의사회
경기도의사회 이동욱 회장이 남학생이 입원 중인 병실을 찾았다. ⓒ 경기도의사회

남학생이 퇴원하기 전날, 나는 경기도의사회 이동욱 회장님과 함께 남학생이 입원 중인 병실을 찾았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몰라보게 건강해진 남학생의 모습에 보람을 느꼈다. 필리핀으로 돌아가기 전, 화성행궁과 롯데타워를 구경시켜 주기로 했다. 남학생의 어머니는 이제 곧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사무처장님을 붙잡고 흐느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 역시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내년에도 필리핀으로 의료봉사 갈 테니 그때 아이타족 마을에서 다시 보자고 약속하면서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화성행궁을 구경 중인 모자. ⓒ 경기도의사회
화성행궁에서 기념촬영 중인 필리판 아이타족 모자. ⓒ 경기도의사회

모자가 한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경기도의사회 사무처 직원들이 관광 가이드로 나섰다. 사진을 보니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아이타족은 필리핀에서도 차별받는 소수민족이다. 나는 과거에 현지의 시립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격리병동은커녕 아이타족의 입원실은 수용소에 가까운 수준이었고 방치돼 있었다.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못하는 그들은 영양 상태가 좋지 못할 뿐 아니라 질병에도 무방비 상태였다.

만약 남학생이 한국에 오지 못했다면 고통 속에 신음하다 청춘을 꽃피우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는 새 생명을 얻었고 자신을 구해준 한국의 의료진과 경기도의사회 사무국 직원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필리핀과 한국의 우호 관계를 높이고 국위 선양에 기여한 이번 프로젝트를 도와준 많은 분께 감사드리면서 내년에 떠날 의료봉사를 설렘 속에서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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