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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가 의료 접근성 높인다고? 실상은 의료 접근 장벽만 높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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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가 의료 접근성 높인다고? 실상은 의료 접근 장벽만 높일 뿐
  • 경기메디뉴스 한진희 기자
  • 승인 2020.06.08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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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의연, 대한민국 원격의료 정책 추진과 원격진료 도입에 대한 분석 보고서 추가로 내놔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 경기메디뉴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 경기메디뉴스

바른의료연구소(이하 바의연)가 대한민국 원격의료 정책 추진과 원격진료 도입에 대한 비판적 분석 보고서를 추가로 발표했다.

이번 분석 보고는 OECD 보고서 ‘Bringing health care to the patient: An overview of the use of telemedicine in OECD countries’(이하 OECD 원격의료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로, 지난 2일과 4일에 이은 세 번째 보고서이다.

세 번째 보고서는 ▲원격의료가 의료 역차별을 유발하고 지역 간 의료 격차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는 점 ▲정부 주도의 하향식 원격의료 추진 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으며, 공급자와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사업의 필요성을 평가해야 하는 점 ▲원격의료 추진은 보건의료 종사자의 피로도를 높이고 노동 시장의 변화를 초래하는 점 등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먼저 바의연은 “전 세계 사람들이 디지털 기술을 폭넓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여전히 성별, 연령, 지역, 경제 및 교육 수준에 따라 원격의료에 대한 접근 장벽은 존재한다”면서 원격의료가 의료 역차별을 유발하고, 지역 간 의료 격차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25~44세의 영상상담 서비스 수요가 65세 이상에 비해 1.5배 높았고 이용률은 35배나 높았다. 또, 소득 수준이 가장 낮은 집단의 경우 원격상담 이용 수요가 평균보다 1.6배 낮았지만, 실제 이용률은 6배 더 낮았다. 이러한 현상은 농촌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원격의료 서비스가 가장 필요한 사람은 나이가 많고, 의료 접근성이 낮은 농촌 지역에 살면서 소득과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지만, 정작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디지털 이해 능력이 낮고, 접근도 쉽지 않아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

또 다른 예로 OECD 전체적으로 보면 평균적인 수준의 사람들과 비교해 가장 빈곤한 계층은 인터넷을 이용해 건강 정보를 검색한 비중이 65% 낮았고, 교육 수준이 가장 낮은 계층은 50% 낮았다. 의료의 접근 장벽이 높아질수록 소득이 낮은 사람들은 의사, 특히 전문의를 만나 진료받을 가능성이 낮다. 그런데 이들에게 원격의료는 또 다른 접근 장벽으로 작용해 저소득층과 교육 수준이 낮은 계층은 원격의료를 이용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조사에 참여한 5개의 국가는 원격의료 서비스의 장애 요인으로 농촌 지역의 광대역 인터넷 서비스 부족 등 ICT 인프라 부족 문제를 지적했다. 원격의료 서비스 제공은 교환되는 정보의 양과 유형에 따라 크게 다르다. 예를 들어, 로봇을 사용한 원격수술 등에는 최대 100Mbps의 안정적인 고속 연결이 필요하지만, 실시간으로 이뤄지지 않는 저장 후 전달 서비스 및 원격 모니터링 서비스는 흔히 사용 중인 네트워크를 통해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OECD 전역에서 농촌 지역은 도시 및 기타 지역보다 이러한 광대역 네트워크 인프라가 뒤떨어져 있다.

이에 바의연은 “OECD 원격의료 보고서에서도 지적했듯이 원격의료는 언뜻 보면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사용자 편의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저소득층과 저교육층, 만성질환 고령층, 대면 진료가 어려운 농촌 지역 주민 등은 원격의료 서비스가 가장 필요하지만, 실상은 가장 원격의료를 이용하기 힘든 계층”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것이 바로 원격의료가 가지는 한계점이며, 이러한 문제에 대한 고려나 보완책 없이 추진되는 원격의료 정책은 의료 역차별을 조장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 주도의 하향식 원격의료 추진 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고, 공급자와 지역사회 중심으로 사업의 필요성을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영국의 사례를 근거로 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건강 관리 분야의 공공 ICT 프로젝트 중 하나인 영국의 NPfIT(The National Program for IT in the NHS)는 시행 10년 만에 예산을 크게 초과하고, 많은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은 채로 공식적으로 중단됐다. 프로젝트 종료를 발표한 정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중앙집중식 및 하향식 접근 방식은 궁극적으로 부적절하며, 국가 보건 서비스의 향후 IT 프로젝트는 지역사회의 의사 결정에 의해 필요성과 적용 범위 등을 잘 조율해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의연은 “원격의료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려면, 의료 제공자가 치료의 질을 향상시키고 환자와 지역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의료 제공자가 주도적으로 원격의료를 추진하고 관리하면서 지역사회는 가장 적합한 보건의료 계획을 세우고, 정부부처는 지역사회에서 세운 계획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모범 사례를 찾아 이를 타 지역사회로 전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원격의료와 관련한 변화와 혁신이 일어나고 지역사회에 확산되려면 정부의 지원 및 규제 완화와 같은 정책 환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원격의료 정책 추진의 방향은 정부 주도의 하향식 접근 방식을 고수하고 있고, 의료 공급자나 지역사회와는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 우려를 표했다.

원격의료 추진이 보건의료 종사자의 피로도를 높이고, 노동시장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에는 미국의 사례를 인용했다. 미국 의사의 절반 이상이 번아웃(Burn-out) 증상의 주요 원인으로 업무 프로세스의 비효율성과 과도한 업무량을 꼽았다. 그리고 비효율적인 업무 프로세스의 상당 부분은 행정 및 관리 프로세스의 디지털화와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소프트웨어나 디지털 관련 업무에는 실패 사례가 자주 발생하는데, 2011년부터 2015년 사이에 보건의료 분야에서 추진된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보면 5개 중 1개꼴로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의연은 “원격의료는 혁신적인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의 변화를 필요로 하고, 이를 위해서는 여러 관계 기관 및 직업군에 걸쳐 광범위한 변화가 필요하다”며 “그러나 근로자 대부분은 변화와 관련된 업무량 증가에 이미 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고, 추가적인 변화를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원격의료 추진과 같은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는 보건의료 종사자들의 저항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원격의료 추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할 보건의료인 단체나 전문가 조직과의 협의 과정이 전무한 점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아울러 원격의료 서비스의 확대 및 적용은 보건의료 관련 노동 환경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바의연은 “원격의료를 제공하는 의료기관들이 대면 진료의 비중을 줄이고, 원격의료 서비스의 비중을 늘리게 되면 전체적인 보건의료계 노동시장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면서 “여기에 상급 의료기관까지 원격의료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지면, 1차 의료기관들의 경영난이 심화돼 1차 의료기관 종사자들의 일자리 감소로도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원격의료 서비스 도입으로 발생하게 될 보건의료계 실업률 증가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현 정책 속에 이러한 내용이 포함돼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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