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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 걸림돌 8개 중 7개 공공정책 관련… 준비 없는 추진 ‘위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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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 걸림돌 8개 중 7개 공공정책 관련… 준비 없는 추진 ‘위험’ 경고
  • 경기메디뉴스 한진희 기자
  • 승인 2020.06.0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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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격의료 정책 추진과 원격진료 도입에 대한 두 번째 비판적 분석 보고서 나와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 경기메디뉴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 경기메디뉴스

바른의료연구소(이하 바의연)가 대한민국 원격의료 정책 추진과 원격진료 도입에 대한 두 번째 비판적 분석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번 분석 보고는 OECD 보고서 ‘Bringing health care to the patient: An overview of the use of telemedicine in OECD countries’(이하 OECD 원격의료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로, 바의연은 지난 2일 첫 번째 보고서를 공개한 바 있다.

두 번째 보고서는 ▲원격의료의 비용 효과 우월성에 대한 가설이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점 ▲원격의료가 불필요한 의료 수요를 늘리고 의료공급자 간 과도한 경쟁을 부추겨 의료전달체계를 위협할 수 있는 점 ▲정부 차원의 올바른 의료정책, 지불제도 정비, 원격의료 관련 기술 표준화, 정보 보안 강화, 법률 제정 등의 조치 없이 추진하는 원격의료 추진의 위험성 등을 중심으로 작성됐다.

먼저 바의연은 “원격의료의 비용 효과가 우월하다는 가설은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것”이라며 “국가별로 다양한 상황과 방식으로 원격의료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원격의료 서비스의 비용 효과성에 관한 평가를 일반화시키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OECD 원격의료 보고서를 살펴보면, Umbrella review에 포함된 원격의료의 비용 효과성에 중점을 둔 19개의 체계적인 검토 연구 및 메타 분석 중 8개만이 원격의료가 비용 효과적이거나 잠재적으로 효과적일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비용 효과적인 원격의료에는 류머티스 관절염 관리, 전산화 인지 행동 치료(cCBT), 원격 신경과 진료, 모바일 장치를 통해 제공되는 원격의료 지원, 정보 및 데이터 수집, 인공 심박동기 원격모니터링, 기질적 질병 감별을 위한 원격 피부과 진단이 포함됐다. 이러한 분야에서 원격의료는 임상적인 효과와 더불어 건강관리 직원의 업무량 감소, 환자의 대기 및 이동 시간 단축, 불필요한 대면 진료 감소, 상담 시간 단축, 대면 서비스 비용보다 저렴한 단가 등을 통해 비용 효과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5개의 체계적인 검토 연구 및 메타 분석에서는 원격의료가 비용 효과적이거나 비용 절감이 된다고 하더라도 의료 질 저하와 비용 데이터의 부족으로 인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또, 3개의 체계적인 검토 연구 및 메타 분석에서는 연구 결과에서 변이가 심하게 나타나 결론에 도달할 수 없었다.

비용 효과성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도 했다. 같은 국가에서도 상황에 따른 차이 때문에 동일한 행위가 비용 효과적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 원격 홈케어 이용에 대한 검토 연구에서 지역별 지불 방식의 차이로 인해 2개의 연구에서는 비용 절감 효과가 보고됐으나, 3개의 연구에서는 비용이 오히려 증가했다.

이에 바의연은 “연구 방법을 일정하게 해도 원격의료 행위가 평가되는 척도의 차이, 평가에 사용된 관점의 차이, 평가 기간 선택의 차이 및 비교 대상의 차이 등 다른 요소가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지금까지 이뤄진 대부분의 원격의료 서비스에 대한 경제성 평가보고서의 질이 낮기 때문에, 원격의료가 비용 효과성이 있다고 평가한 연구 결과들을 일반화시키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바의연은 또 “국토가 넓어 의료접근성이 낮고, 의료수가가 높아 원격의료가 기존 전통적인 치료보다 비용 절감 측면에서 우월한 성과를 낼 것이라고 예상했던 국가조차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면서 “좁은 국토, 높은 의료접근성, 낮은 의료수가로 대표되는 국내 환경에서 원격의료의 도입은 의료이용 옵션 추가에 불과해 의료비 폭증만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원격의료가 불필요한 의료 수요를 늘리고, 의료공급자 간 과도한 경쟁을 부추겨 의료전달체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는 실제 원격의료를 시행 중인 국가들의 데이터를 들었다. 원격의료 서비스의 수와 양에 대한 데이터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수집하고 보고하는 사례가 드문데도 이들 국가의 데이터를 살펴보면, 원격의료를 이용하는 의료기관과 환자 수 및 제공되는 서비스의 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캐나다에서는 2012년부터 2014년 사이 원격의료를 이용하는 기관의 수가 7297개에서 1만 351개로 42% 증가했으며, 원격모니터링 중인 환자의 수도 2465명에서 3802명으로 54% 늘었다. 실시간 원격의료는 28만 2529건에서 41만 1778건으로 46% 증가했다. 멕시코의 경우, 2017년 원격상담의 수가 전년 대비 152% 증가했다. 포르투갈에서는 실시간 원격의료와 저장 및 전달 원격상담의 수가 2013년 1만 2127건에서 2017년 18만 8369건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며, 미국은 전국적인 소비자 조사 결과 환자와 의료제공자 간 실시간 원격의료 사용이 2013년 6월 6.6%에서 2016년 12월에는 21.6%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의연은 원격의료 서비스가 불필요한 병원 이용을 감소시킬 수도 있지만, 의료 수요를 더 자극할 수도 있다는 근거도 제시했다. 미국에서는 심장 마비에 대한 원격모니터링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검토한 결과, 응급실 방문 가능성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증상의 급격한 악화를 조기에 발견한 것일 수도 있지만, 모니터링 결과를 환자가 수시로 확인하면서 증상에 대한 평가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일 수도 있다. 또, 미국에서 실시간 화상 상담 서비스는 대면 방문을 33% 줄였지만 18개월 동안 전체적으로 보면 원격진료 및 기존 방문이 80% 이상 늘어났다. 또한, 시행 첫해 이후에는 원격의료가 일반의료를 대체하는 효과가 감소했다. 노르웨이에서는 원격모니터링을 통해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병원 방문 횟수는 줄어들었지만 1차 진료는 약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원격모니터링이 1차 의료 이용률을 감소시키지 못한다는 이전의 연구 결과들과 일치한다.

이에 더해 원격의료 제공자가 기존 대면 진료 의사와 다르고, 환자가 원격의료 제공자를 조건 없이 선택할 수 있다면 의료전달체계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영국에서는 일반적으로 1차 의료수가에 인두제를 적용하는데, 원격의료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은 자신의 할당 지역 밖의 환자도 원격으로 진료할 수 있어 젊은 환자들을 위주로 자신의 지역 밖에서 환자를 유치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그 결과, 실제 대면 진료는 비교적 건강한 젊은 환자보다 복잡한 질환이 있는 환자나 고령 환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져 1차 의료기관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원격의료 제공자가 처음 접한 환자를 진료하는 경우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해 오진의 위험성이 증가하고, 진료의 연속성도 제한된다. 이에 일부 국가와 지역에서는 원격의료를 받기 전이나 후 직접 대면 진료를 하도록 하고 있으며, 1차 진료의 원격진료를 제한하거나 급여 보장을 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바의연은 “결국 원격의료는 1차 의료 영역에서의 수요 감소 효과 없이 의료기관 간 과다한 환자 유치 경쟁 및 의료전달체계 왜곡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원격의료 서비스를 상급 의료기관에서도 제공할 수 있게 허용하면, 환자 유치 경쟁이 더욱 과열돼 상급 의료기관과 경쟁이 어려운 1차 의료기관의 폐업으로 이어지고 의료전달체계 붕괴와 함께 대면 진료의 의료접근성 하락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바의연은 정부 차원의 올바른 의료정책, 지불제도 정비, 원격의료 관련 기술 표준화, 정보 보안 강화, 법률 제정 등의 조치 없이는 원격의료가 성공할 수 없다고도 강조했다. 현재 원격의료 서비스 확대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8가지 장애 요소 중 7가지가 공공 정책과 관련돼 있다. 재원 조달과 명확한 지불 및 상환 방식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문제가 가장 큰 장애물이며, 유럽에서도 같은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현재 원격의료가 공공재정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원격의료 제공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급여 범위뿐만 아니라 원격의료에 디스인센티브를 가하는 지불제도도 장애 요인으로 꼽힌다. 의료기관 종별로 재원 조달기관이 다른 것도 장애 요인이다. 노르웨이의 경우 1차 의료 재정은 지방정부가 담당하고, 병원의 경우 중앙정부가 재정 지원을 맡는다. 호주는 메디케어에서 1차 의료 재정을 담당하고, 병원은 주정부연합과 연방정부 및 비정부 기금 등을 통해 재정을 지원받는다. 미국에서는 지불정책에 따라 특정 원격의료 서비스에 대해 지불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정보통신 기술의 호환성 부족도 걸림돌이다. 정보통신 기술과 호환성의 표준화 작업이 이뤄져야 원격의료 응용 프로그램 개발의 핵심 사항인 기록의 공유와 교환이 가능해진다. 21개 OECD 국가에는 이러한 부분에 대한 국가 표준을 설정하는 국가기구가 있지만, 18개 국가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11개국만이 표준을 채택하고 구조화된 데이터를 사용하도록 하는 인증 절차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6개 국가에서는 원격의료 서비스 이용에서 사생활 보장 및 개인정보의 보안을 중요하게 언급했다.

OECD 원격의료 보고서에서 조사에 참여한 국가 중 7개 국가는 정부의 일관성 있는 관리 정책의 부재, 재원 조달 정책의 부재를 원격의료 확대의 장애 요소로 지적했다. 또 다른 6개국은 원격의료에 특수하게 적용될 법률 제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언급했다. 특히, 오진 가능성이 높은 원격의료의 특성을 감안해 의료인의 책임 범위를 정하고, 오진 및 과실이 발생했을 때 이를 대면 진료와 차별화하는 법률의 제정은 원격의료 활성화 및 의료 제공자들의 부담 해소에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바의연은 “이러한 법안은 환자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비양심적 의료 행위를 조장할 우려도 있어 쉽게 만들어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며 “원격의료는 복잡하고 광범위한 전문분야, 그리고 다양한 수단과 기술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일관된 전략을 만들고, 원격의료의 범위를 다양한 측면에서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과연 이러한 부분에서 우리나라는 얼마나 준비돼 있느냐”고 반문한 뒤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화진료가 중심이 되는 비대면 진료라는 이름으로 원격의료를 추진하게 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은 당연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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