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지난 8월 29일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이 통과된 데 대해 "간호법 제정으로 인해 대한민국 의료 붕괴는 기정사실화되었고, 정부와 국회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버린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정된 간호법의 문제점에 대해 "여러 직역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일을 하는 보건의료의 특성을 무시하고 간호사만을 위한 개별 법안이 만들어졌기에, 보건의료인 면허 및 자격제도에 혼란과 직역 간 갈등은 불가피해졌다. 또한 다른 보건의료 직역들의 단독법 제정 움직임을 막을 명분도 사라졌기에 직역별로 수많은 단독법이 제정되고 의료법은 누더기가 될 것이 자명 해졌다"라고 전망했다.
병원의사협의회는 "간호사의 활동 영역에 재가와 사회복지시설을 명시함으로써, 지난 회기 제정에 실패했던 간호법에 있던 '지역사회' 문구를 오히려 더욱 구체적으로 법에 명시하는데 성공한 간호협회와 노조 및 민주당 세력은 돌봄 사업의 주도권을 쥐고 흔들 것이고, 이는 기득권 간호사들과 민초 간호사들의 양극화를 초래하면서 간호사들의 탈병원화를 부추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22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이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간호법보다 더욱 심각한 악법인 이유는, 간호사의 진료지원 업무를 합법화시킴으로써 지금까지 불법이었던 PA에 의한 불법 의료행위를 하루아침에 합법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의사의 일반적 지도와 위임만 있으면 정부의 시행령에 근거해 어떠한 의료행위도 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시행령에서 의사의 위임 하에 간호사가 수술을 할 수 있도록 하면, 간호사의 대리수술도 합법이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의사의 지도와 위임 하에 진료지원 업무가 이루어진다고 명시되어 있으므로, PA 간호사의 실수로 의료사고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법적 책임은 상당 부분 의사에게 전가될 전망이다.
또한 간호법에서는 진료지원 업무를 할 수 있는 간호사를 전문간호사 자격을 취득하거나, 보건복지부령에서 정하는 임상경력과 교육과정을 이수한 후 자격증을 취득한 경우로 정해 놓았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PA 간호사는 수년간의 교육과정을 거친 후 시험을 통해 선발되고, 자격 취득 이후에도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과 질 관리 프로그램을 통해 전문성을 유지하고 있는 전문 직역이다.
병원의사협의회는 "하지만 PA 합법화를 위해 급조된 이번 간호법에서 말하고 있는 임상경력과 교육과정이 외국의 PA 교육 시스템처럼 될 리는 만무하기에, 사실상 간호법에서 말하는 PA 간호사의 자격증 제도는 요식행위에 불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임상경력 1~2년 이상만 되는 간호사라면 누구나 온라인 교육 및 온라인 시험을 통해 취득할 수 있는 형식적 자격증 제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결국 대한민국 PA 간호사에게 외국 PA 수준이나 의사 수준의 전문성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고, 이러한 방향은 의료의 질 저하를 필연적으로 불러오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간호법은 앞으로 간호사, 의사, 국민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병원의사협의회는 "역설적이게도 간호법은 민초 간호사들의 처우를 더욱 열악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은 법이다. 이번 간호법에는 간호사 처우 개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간호사 대 환자 수에 대해서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줄이기 위한 정책 수립 및 지원이 가능하다는 문구만 들어있어 사실상 변한 것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존 업무량은 그대로인 반면, 앞으로 더욱 많은 간호사들은 기존에 전공의들이 해오던 진료지원 업무에 내몰리고, 법적 리스크까지 떠안아야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무리 의사의 지도와 위임 하에 진료지원 업무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의료행위를 직접 시행한 사람의 과실을 환자와 법원이 면책해 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라고 분석했다.
병원의사협의회는 "간호법 제정으로 인해 PA 합법화가 이루어지면, 지금도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수련의 질은 더욱 추락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내시경은 구경도 못 해본 내과 전문의, 수술 집도를 한 번도 못 해본 외과 전문의가 배출되는 황당한 상황에서, PA 합법화는 사실상 전공의 수련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키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3~4년의 전공의 생활을 거쳐 전문의가 되어도 전문의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전공의 기간보다 더 긴 기간을 전임의로 생활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수련 시스템의 붕괴는 결국 의사들의 전공의 기피 심화로 이어지고, 교육할 전공의가 사라진 수련병원은 사실상 교육과 연구의 역량이 사라진 껍데기 수련병원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또한 전문의 배출 인원이 급감하고 일반의와 미용의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기존의 대한민국 중증 및 응급의료 시스템은 붕괴될 것이다. 그리고 대형 종합병원은 극소수의 전문의와 대다수의 PA가 꾸려가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기형적인 형태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