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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음파 판결은 우리나라 사법 체계의 후진성을 극명하게 드러낸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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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음파 판결은 우리나라 사법 체계의 후진성을 극명하게 드러낸 판결"
  • 경기메디뉴스 김선호 기자
  • 승인 2023.03.0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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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욱 교수, 대한의학회에 '상상으로 과학을 능멸하는 대법원 초음파 판결' 기고
기사와 관련 없는자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기사와 관련 없는자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박형욱 교수(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 변호사)가 대한의학회 뉴스레터 최근호에 '상상으로 과학을 능멸하는 대법원 초음파 판결'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초음파 판결은 우리나라 사법체계의 후진성을 극명하게 드러낸 판결"이라고 논평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22년 12월 22일 한의사 초음파 판결을 했다.

당시 의료계는 "불법 의료행위로 오진한 한의사를 처벌해달라 했더니 10년이 지나서야 무죄라고?"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규탄 성명서를 잇따라 냈고, 규탄 시위를 잇따라 진행했다.

박형욱 교수는 대한의학회 기고문에서 "초음파 판결은 우리나라 사법체계의 후진성을 극명하게 드러낸 판결이다. 끊임없이 검증하고 개선해 나가는 현대의학과 그 수행자에 대해 검증이 무엇인지 모르고 의과학적 사고방식이 무엇인지 모르는 대법원이 상상력에 의존하여 이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단정한 판결이다. 그리고 그 부작용은 오로지 국민이 감내해야 한다. 참담한 마음이 앞선다"라고 언급했다.

의료법은 무면허 의료행위를 처벌한다. 의료법 제27조 제1항은 두 종류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규정하고 있다. 첫째,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둘째,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후자의 무면허 의료행위는 의료인 사이의 업무 범위와 관련된다. 그런데 의료법은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 치과의사는 치과의료와 구강보건지도, 한의사는 한방의료와 한방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고 개략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의료인 사이의 업무범위에 관한 다툼은 사실상 판례에 의해 정립되어 왔다.

종래 대법원은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에 관하여 ①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해당 의료기기 등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이 있는지, ② 해당 의료기기 등의 개발·제작 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한 것인지, ③ 해당 의료기기 등을 사용하는 의료행위가 한의학의 이론이나 원리의 응용 또는 적용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④ 해당 의료기기 등의 사용에 서양의학에 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아 한의사가 이를 사용하더라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적용해 왔다.

그런데 2022년 12월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의사인 피고인이 2년에 걸쳐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여 오진한 사건에서 무죄 취지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기존의 판단기준을 폐기하고 ①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해당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지, ② 해당 진단용 의료기기를 한의사가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면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지, ③ 한의사가 해당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였다.

박형욱 교수는 "요컨대 대법원은 한의사의 업무 범위와 관련하여 해당 진단용 의료기기가 한의학적 원리에 기초한 것인지를 더 이상 따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의료행위가 한의학적 원리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하지 않는 한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보건위생상 위해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서양의학에 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지를 따지지 않고 한의사가 해당 의료기기를 사용하면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위해가 발생하는지 여부만을 살피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이다.

이러한 새로운 판단기준에 따라 대법원은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한 행위는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박형욱 교수 ©경기메디뉴스
박형욱 교수 ©경기메디뉴스

이에 박 교수는 "초음파 판결은 너무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우선, 대법원은 진단용 의료기와 치료용 의료기기를 구별하여 진단용 의료기기에 한해서만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아마도 대법원은 치료기기까지 한의사의 업무 범위로 인정하면 많은 비판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 듯하다"라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그러나 진단기기는 안전하고 치료기기는 위험하다는 논리는 사물의 위험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초등학생의 논리와 비슷하다. 진단기기를 잘못 사용하면 치료기기보다 환자에게 더 큰 위해가 발생할 수 있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더 나아가 의료법령에는 진단기기와 치료기기를 구별하여 업무 범위를 허용할 수 있다는 논거가 전혀 없다. 따라서 자의적으로 진단기기만을 떼어내어 한의사가 사용해도 된다는 논리는 법을 해석하는 것을 넘어 법을 만드는 것이며 이는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대법원은 한의사가 한의학적 원리에 따라 주된 진단을 하고 현대의학의 진단용 의료기기를 보조수단으로 사용한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박 교수는 "이는 근거 없는 상상일 뿐이다. 당뇨병의 진단에서 혈당과 뇨당의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주된 진단(혈당)은 보조 진단(뇨당)보다 환자의 상태를 더 정확히 판단하고 치료효과도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주된 진단과 보조 진단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규명되어 있어야 한다"라며 "그러나 한의학적 진단이 현대의학의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한 진단보다 더 정확하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더 나아가 한의학적 진단과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한 진단 사이의 관계도 전혀 입증된 바 없다. 따라서 현실에서는 오히려 한의사가 현대의학의 진단용 의료기기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고 전문적 지식의 결여로 대규모 오진이 발생한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또한 대법원은 한의사가 초음파를 사용하는 것이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하였다. 

박 교수는 "이 사건에서 한의사는 2년여에 걸쳐 68회나 초음파 촬영을 하였으나 자궁내막암을 진단하지 못하였다. 당연히 암을 제때 진단하지 못하면 환자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될 수 있다. 놀랍게도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조차 환자에게 발생한 위험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의사가 대법관이나 그 가족에 대해 2년에 걸쳐 68회나 초음파를 하고도 제때 암진단을 못하였다면 대법관은 뭐라고 했을 것인가? 통상적인 수준 이상의 위해는 없었다고 할 것인가? 아닐 것이다. 초음파 판결에서 보이는 대법원의 눈 감고 귀 막은 논리에 놀라울 뿐"이라고 언급했다.

이외에도 초음파 판결에서 보이는 논리의 비약과 상상의 논리는 매우 많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대법원이 한의사의 초음파 행위를 허용하는 논거로 세계보건기구(WHO)를 거론한 것에는 실소하게 된다. WHO가 전통의학에 대하여 근거중심의학의 체계를 갖추도록 권고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여 WHO가 침술사 혹은 중의학 시술자에게 마치 의사처럼 현대의학의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전혀 아니다. WHO의 권고를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과학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의학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침술사 혹은 중의학 시술자에게 현대의학의 훈련이 필요한 의료기기를 마음대로 사용하게 하자는 것은 그 자체로 비과학이기 때문이다. WHO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대법원이 사법적극주의의 이념에 따라 사회를 선도하는 판결을 내릴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판결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라며 "의학계는, 우리 사회는 대법원에 대하여 판결에 책임을 지는 검증을 요구해야 한다. 과연 한의사가 한의학적 진단방법으로 임신을 제대로 진단할 수 있는가? 한의사가 한의학적 진단방법으로 당뇨병을 제대로 진단할 수 있는가? 한의사가 한의학적 진단방법으로 자궁내막증을 제대로 진단할 수 있는가? 한의학적 진단과 현대의학의 진단용 의료기기를 이용한 진단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고 화두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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