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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행정 공적 마스크에 업무 과부하 걸린 도·시군구 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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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행정 공적 마스크에 업무 과부하 걸린 도·시군구 의사회
  • 경기메디뉴스 한진희 기자
  • 승인 2020.03.13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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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회, 마스크 작업하느라 회무 처리할 시간 없어 울상
정부 공급 공적 마스크 분류·발송 인력 부족, 민원전화 폭주로 업무 마비
의료계 단체 현실 고려하지 않은 결과
지난 12일, 경기도의사회관 앞에 시군 의사회로 보낼 공적 마스크 박스가 한가득 쌓여있다. ⓒ 경기메디뉴스
지난 12일, 경기도의사회관 앞에 시군 의사회로 보낼 공적 마스크 박스가 한가득 쌓여있다. ⓒ 경기메디뉴스

최근 정부가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를 통해 전국 의원급 의료기관에 공적 마스크를 공급하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 단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으로 도 및 시군구 의사회가 업무 과부하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는 6월 30일까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등록된 의료기관별 의료인력의 5배수에 해당하는 마스크 물량을 매주 의협을 통해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12일, 경기도의사회에는 9일에 이어 공적 마스크 2차분 19만 4000장이 도착했다. 문제는 이 마스크를 분류하기 위해 사무처 전 직원이 동원됐다는 것이다. 한바탕 마스크 전쟁을 치른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또다시 산더미처럼 쌓인 마스크에 직원들은 깊은 한숨부터 토해냈다.

경기도의사회 사무처 관계자는 “심평원에 등록된 도내 의료인력은 3만 8809명으로 5배수인 19만 4000장이 도착했다”며 “마스크가 도착할 때마다 사무처 전 직원이 나서서 시군별로 배정된 수량을 수작업으로 분류하고 포장한 뒤 화물차를 섭외해 배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번 주의 경우 9일 1차분 작업이 끝난 지 사흘 만에 2차분이 도착해 다른 회무는 신경 쓸 겨를 없이 마스크 작업에만 매달리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경기도의사회가 발송한 마스크를 수령하는 시군 의사회는 상황이 더욱 열악하다. 경기도의사회가 시군별로 1차 분류한 마스크를 시군 의사회에서는 의료기관별로 다시 나누고 포장한 뒤 택배 등을 이용해 각 의료기관에 전달해야 한다.

그런데 도내 31개 시군 의사회 중 별도의 사무국이 설립된 의사회는 17곳에 불과하다. 또, 사무국이 있더라도 직원이 한두 명 수준이거나 가정집을 사무국으로 겸하는 곳도 있어, 대량의 마스크를 보관 및 분류할 공간과 인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경기도의사회 사무처 관계자는 “그나마 사무국과 직원이 한 명이라도 있는 곳은 나은 편”이라며 “사무국 없이 회장이나 총무만 있는 시군은 회장 또는 총무 회원이 근무하는 병원으로 마스크를 보내 분류와 발송을 부탁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장 난감한 것은 사무국은커녕 회장이나 총무조차 없는 지역이다. 대표적인 곳이 의왕시이다. 이 지역은 경기도의사회 사무처에서 의료기관마다 일일이 연락을 취하고 마스크 구입 의사를 확인한 뒤 각 의료기관에 배정된 마스크 수량대로 포장해 발송하고 있다.

경기도의사회 사무처 관계자는 “의료기관별 대표자 휴대전화 번호라도 알면 공적 마스크 지원 사실을 알리고 신청 희망자는 연락 달라고 단체 문자라도 보내겠지만, 개인정보 문제로 의료기관명과 대표번호만 전달받아 일일이 전화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의료인력을 제대로 등록하지 않은 경우 마스크 5장, 10장을 보내기 위한 택배비 낭비도 심각해 공적 마스크 지원 설명도 할 겸 사무처 직원이 직접 배송까지도 나섰다”고 설명했다.

경기도의사회 사무처 직원들이 시군별로 배정된 수량에 따라 마스크를 분류하고 있다. ⓒ 경기메디뉴스
경기도의사회 사무처 직원들이 시군별로 배정된 수량에 따라 마스크를 분류하고 있다. ⓒ 경기메디뉴스

이렇게 마스크로 인한 업무 과부하 속에 직원들을 더욱 지치게 하는 것은 쏟아지는 민원전화 폭탄이다. 12일, 경기도의사회 사무처 직원들이 마스크 분류 작업에 매진하는 동안에도 전화벨 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우리 병원에 종사하는 의료인 수는 더 많은데 왜 마스크를 이것밖에 안 주느냐”, “마스크를 더 구하고 싶은데 여분이 없느냐” 등 민원 내용도 다양했다.

의료기관이 심평원에 의료인력의 수를 제대로 등록하지 않았거나, 의료인력의 입사와 퇴사 등이 반복되면서 현재 인력의 수와 차이가 생겨 벌어진 일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등록된 의료인력 명단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명단이 확보될 경우 등록된 의료인력의 수와 실제 인력과 달라 벌어지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난관이 있다. 심평원에 등록된 의료인력은 18만 명인 데 반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등록된 의료인력은 26만 명에 달하는 것. 이에 각 도 및 시군구 의사회로 전달될 마스크의 수량이 늘어나면서 업무 적체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한, 정부는 공적 물량을 임의로 할당하면서도 임의 처분은 금지했다. 이는 곧, 의료기관에서 마스크 구입을 원치 않아 재고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마스크가 부족한 다른 의료기관에 전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경기도의사회 이동욱 회장은 “도 및 시군구 의사회마다 처리해야 할 다른 회무도 많은데 매주 마스크 분류 및 발송 작업과 민원전화 때문에 제대로 업무를 보기 어려운 지경”이라며 “의료계 단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탁상행정 때문에 언제까지 이렇게 마스크 업무와 민원에 시달려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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