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5 15:58 (목)
[창간기념 심층기획] ⑤ 왜 한국 정신과 전문의는 레지던트를 다시 하면서까지 미국 의사의 길을 택했나
상태바
[창간기념 심층기획] ⑤ 왜 한국 정신과 전문의는 레지던트를 다시 하면서까지 미국 의사의 길을 택했나
  • 경기메디뉴스 한진희 기자
  • 승인 2021.12.03 11:22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의료현실에 좌절… 새로운 배움을 찾아 도미
모든 면에서 만족… 과거로 간다면 졸업 후 최대한 빨리 미국행 택할 것
미국에서 의사 생활을 꿈꾸는 이들에게 정보 제공 위해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과정 수료, 대한민국 정신과 전문의 자격 취득… 남부럽지 않은 스펙을 자랑하는 이주영 씨. 그러나 그는 현재 한국에 살지 않는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한 병원에서 소아정신과 펠로우로 수련 중이며, 올 상반기까지는 미국의 한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다. 한국에서 전문의 자격증까지 취득한 그가 타국에서 다시 레지던트 과정까지 반복하는 모험 내지는 도전을 감행하게 된 배경에 자연스레 관심이 쏠린다.

■ 의료전달체계, 저수가, 비과학 편중 의료정책에 염증

“전공의 말년 차에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과 원격의료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총궐기대회가 있었어요. 사안에 대한 찬반을 떠나 그 과정에서 여러 의사들의 목소리를 듣게 됐고, 의사들이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정부와 대치상황까지 오게 된 배경을 살펴보게 됐죠.”

그동안은 당장 눈앞에 주어진 일에만 열중하느라 깊게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던 대한민국 의료체계의 문제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먼저,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들었다.

“대한민국은 환자가 원하면 아무 병원이나 갈 수 있는데, 이게 굉장히 자원을 낭비하는 구조예요. 저수가 문제도 심각하더라고요. 어떤 의료행위는 한번 시행할 때마다 오히려 적자가 나는 상황인데, 사람 심리상 나에게 손해가 가는 일을 선뜻 하려고 하는 사람은 흔치 않죠.”

과학에 기반을 둔 의학과 한의학이라는 비과학적 영역이 같은 건강보험으로 묶여 제도 자체가 비과학적으로 쏠리는 의료정책의 현실에서도 염증을 느꼈다. 무엇보다 이러한 현실이 개인의 노력으로 개선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답답했다.

■ 미국 정신과 교육에 관심…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찾아서

탈출구를 찾던 그에게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미국 정신신체의학 학회에 참석할 기회가 생겼다. 미국 서부의 날씨와 학술 교류 분위기는 그를 매혹했다. 또, 뉴욕 코넬 의대로 안식년을 다녀온 수련 병원 교수로부터 미국 정신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들을 접하며 새로운 땅에서의 배움에 대한 욕심도 생겼다.

이에 군의관 생활을 하면서 차근차근 필요한 준비를 마치고 전역 후 바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첫 직장인 메릴랜드 대학병원에서 성인정신과 레지던트로 일하며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이방인 의사로서 현지 사회에 적응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제가 초반에 영어가 불편해서 환자 면담을 느릿느릿 진행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응급실에서 술에 취한 한 환자가 ‘이 중국에서 온 의사한테 나 진료 보기 싫다. 영어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 데려와’라고 저에게 소리 질렀던 것이 기억이 나네요.”

그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언어 문제였지만, 실상은 ‘생각하는 능력의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이 더 컸다고. 한국에서는 결론 중심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반해 미국은 생각의 흐름을 말로 계속 표현하기를 요구하는 것. 초반에는 영어 실력도 부족한 데다, 기본적으로 생각을 말로 읊는 사고방식의 부재로 1년 넘게 혹독한 고생을 치러야 했다.

■ 전문의 대비 30% 수준 펠로우 연봉… 그러나 만족스러운 삶

펠로우 수련 중인 그는 미국 전문의 대비 25~33%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소득, 복지, 삶의 질 모든 면에서 만족한다고 말한다. 의료보험료가 저렴하고, 출퇴근 시간이 정확하며 휴가가 확실히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의 일과를 살펴보면, 입원 병동에서 근무하는 현재는 오전 8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4시 30분이면 퇴근한다. 대신, 칼퇴근을 위해 점심 식사를 일하면서 샌드위치 등으로 간단히 때우는 경우가 흔하다고. 수요일과 목요일 오후는 외래 시간으로 주로 원격 진료로 재택근무를 하고, 목요일 오전에는 집에서 수업을 듣는다. 주말 근무는 1년에 6주로 정해져 있다.

정규휴가는 1년에 20일로, 학회 휴가 5일, 병가 14일, 개인 휴가 2일은 별개다. 퇴근 이후나 주말에는 휴식이 확실히 보장되는 덕분에 평일 퇴근 후에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자기계발 시간을 갖고, 주말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한국에 계속 남아있었더라면 상상할 수 없었을 삶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과거로 돌아가 다시 선택할 기회가 있다면 한국에서 수련하지 않고 졸업 후 최대한 빨리 미국으로 떠나겠어요.”

■ 자본주의 의료… 초진 1,000달러여도 환자 줄 서

이주영 씨가 미국에서 체감하는 한국과 미국의 가장 큰 의료현실 차이는 ‘의료보험’이다. 한국은 전 국민이 단일보험제도인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돼 있고, 의사들은 의무적으로 건강보험 환자들을 진료해야 한다. 의료 수가는 정부의 강력한 통제와 관리를 받는다.

반면, 미국은 의사들이 보험의 종류를 제한할 수 있다. 의사마다 자신에게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고 이를 삭감하지 않는 보험사를 선택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또, 보험의 종류에 따라 고가의 최신, 첨단 치료까지 보장하기도 한다.

“미국의 의료는 굉장히 자본주의적이라 돈이 있는 환자들은 원하는 최상의 진료를 받을 수 있어요. 반대로, 많은 사람이 보험이 없는 상태로 노출되기도 하고요. 건강에 있어서 사회 안전망이 굉장히 느슨합니다. 한국은 안전망이 촘촘한 대신 공급자들의 고생이 많지요.”

이주영 씨가 근무하는 병원에는 매사추세츠주에서 가입해 주는 의료보험(MassHealth)을 통해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이 많이 찾는다. 의료보험을 이용하는 환자들은 10달러 미만의 진료비만 지불하면 된다고.

그러나 미국 정신과 수가 자체는 한국의 2~3배 정도로 책정돼 있다. 정신과 전문의 중에는 보험 환자를 아예 안 받는 경우도 있다. 정신과 초진 시 800~1,000달러, 재진은 300~400달러를 책정하는데도 환자들이 줄을 선다.

그가 현장에서 일하면서 느낀 또 다른 차이는 미국 병원에는 전원과 입원을 전담하는 부서가 따로 있다는 점이다. 입원 결정이 내려지면 전담부서에서 병실이나 전원을 알아보고, 의사는 의사 본연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 업무 효율이 높다고.

“한국에서 정신과 전공의로 일할 때 가장 힘든 점 중 하나가 응급실 환자의 입원이 필요할 경우 입원이나 전원을 알아보는 거였어요. 병원 내 병실을 알아보고 없으면 다른 병원에 연락을 돌려야 하는데, 병실 구하는 것도 힘들고 어렵사리 병실을 구하면 환자 상태도 전달해야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응급실 다른 환자도 봐야 하고 정말 혼란스러웠죠.”

■ 저수가에 수술실 CCTV 설치까지… 그 피해는 환자 몫 

미국 내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도 보험에서 원격의료를 통한 진료 행위에 대한 환급을 계속해줄지 여부, 의무기록 작성으로 인한 의사들의 번 아웃 현상, 자본이 많은 병원에서 주변 병원을 사들여 통합하고 자체 보험 제도를 만드는 현상 등이 의료계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주영 씨는 미국 내 의료계 이슈는 물론 한국 의료계 이슈에도 꾸준히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중이다. 특히, 한국 의료계 현실에 회의감을 갖게 했던 저수가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그의 판단이 현명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한국은 특히 외과계가 저수가로 문제가 심각한데, 최근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로 더욱 상황이 안 좋아졌어요. 외과 의사 숫자가 줄어들어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까 봐 걱정이 큽니다. 또, 저수가 때문에 의사가 환자를 짧게 여럿을 보는 상황이 생기게 되는데 이러한 진료 행위 때문에 의사들이 놓치게 되는 부분이 있고, 그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주영 씨는 지난해부터 미국에서의 의사 생활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정보, 정신과 전문의가 알려주는 대인관계와 소통의 팁 등 다양한 콘텐츠를 공유하는 ‘정신과의사 이주영’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 유튜브 ‘정신과의사 이주영’ 화면 캡처
이주영 씨는 지난해부터 미국에서의 의사 생활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정보, 정신과 전문의가 알려주는 대인관계와 소통의 팁 등 다양한 콘텐츠를 공유하는 ‘정신과의사 이주영’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 유튜브 ‘정신과의사 이주영’ 화면 캡처

한편, 이주영 씨는 지난해부터 ‘정신과의사 이주영’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전공의 단체 행동이 진행될 당시 한국 출신 미국 의사들의 미국 정착기 등을 담은 영상 업로드를 시작으로, 미국에서의 의사 생활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정보, 정신과 전문의가 알려주는 대인관계와 소통의 팁 등 다양한 콘텐츠를 소개하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한국에서의 의사 생활에 회의를 느끼거나, 미국 또는 다른 국가에서 의사 생활을 꿈꾸는데 정보가 많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의사 후배들에게 필요한 정보, 또 일반 시청자들에게도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틈틈이 영상을 촬영해 올리고 있습니다. 수련이 끝나고 여유가 생기면 더 많은 영상을 올릴 예정입니다. ‘정신과의사 이주영’ 채널 많이 구독해주세요~”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3-05-22 02:31:49
나랑 정반대 생각을 한 사람이 여기 있네. 한국은 환자가 원하면 아무때나 병원을 갈수 있는 시스템이 자원 낭비라는데.저분은 한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 감사함을 모르는것 같다. 해외에서 자랐고, 원할때 바로 바로 병원갈수 없음에 의료인의 길을 택하게 됬는데.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