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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념 심층기획] ③ 수당 없는 당직·눈치 휴가에 고용 불안까지 “봉직의도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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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념 심층기획] ③ 수당 없는 당직·눈치 휴가에 고용 불안까지 “봉직의도 울고 싶다”
  • 경기메디뉴스 한진희 기자
  • 승인 2021.11.26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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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 근무·On-call·야간 당직으로 피로도 심각… 보상도 부족해
심각한 노동력 착취·안전상 위협에도 법 테두리의 보호 받지 못하는 현실

“야간 당직에 On-call까지 몸은 몸대로 축나는데 제대로 돈도 못 받고… 이렇게 사는 제가 호구 같아요.”
“지금 생활에 만족하지만, 나이 들어서도 봉직의로 일할 병원이 있을까요?”
“워라밸? 그게 뭔가요? 잠이라도 실컷 자봤으면 좋겠어요.”
“폭언은 그나마 낫죠. 환자에게 폭행 한번 당하고 난 뒤로는 환자 첫인상부터 살피는 트라우마가 생겼어요.”

환자 감소와 경영난 등으로 개원가의 원성이 자자한 가운데, 월급 받는 봉직의들은 사정이 좀 나을까?

국가통계포털 KOSIS에 따르면, 2021년 3/4분기 기준 전국 의사 인력은 11만 104명이며 이중 가장 많은 근무 형태가 봉직의이다. 의료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각종 규제와 저수가 체계의 심화, 개원가의 생존을 건 치열한 경쟁을 목도하며 자의 반 타의 반 봉직 시장으로 내몰린 이들의 삶 역시 녹록지 않다.

봉직의의 근무 환경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 그동안 봉직의들은 고용 불안과 격무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임금 체불과 안전상의 위협까지 받으며 사실상 방치돼왔다.

봉직의 A씨는 수도권에 있는 병원 취업을 원했으나 월급 외에 추가 보너스와 숙소까지 제공해준다는 제안을 받고 지방의 한 병원에 취업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환자를 진료해도 추가 보너스는 지급되지 않았다. A씨는 “근로계약서에 보너스에 대한 부분을 명확하게 기재하지 않은 탓에 인정에 호소하는 방법뿐이었으나 통하지 않아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라고 씁쓸해했다.
 
매달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 봉직의에게도 고민은 있다. 종합병원에서 봉직의로 일하는 B씨는 “계약직 신분이다 보니 재계약 문제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봉직의 C씨는 “근무시간이나 월급 등 현재는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지만, 나이가 더 들어서도 봉직의로 받아줄 병원이 있을지가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환자의 건강을 챙기는 의사가 정작 자신의 건강은 돌볼 여유조차 없는 극한의 근무 환경도 봉직의들을 위협하고 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이하 병의협)가 2019년 봉직의 근무 환경 실태 파악을 위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초과 근무나 야간근무를 제외한 봉직의들의 정규 근무시간이 평균 주 47시간에 달했다. 의료기관의 규모가 클수록 상황은 더욱 열악해 상급종합병원 외과계는 평균 주 71시간까지도 근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봉직의 D씨는 “법정 근로시간인 1일 8시간, 주 40시간 준수를 바라는 것은 사치”라며 “여기에 초과 근무와 On-call, 야간 당직까지 겹치면서 쌓이는 피로도가 심각하다”라고 호소했다.

실제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27%가 정규 근무와 별개로 야간 당직을 선다고 답했다. 평균적인 야간 당직 횟수는 1주에 1.43일, 야간 당직을 포함한 최장 연속 근무시간은 평균 34시간이 넘었다. 또, 응답자의 47%가 On-call을 받고 있으며, 1주 평균 4.2일, 일 평균 2.4회 On-call을 받는다고 답했다. 심지어 일주일에 한 번은 On-call 때문에 퇴근했다가도 다시 출근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보건업은 주 52시간 이상 근로가 가능한 특례업종이다. 그러나 특례업종 종사자라 할지라도 근무일과 근무일 간 11시간의 연속 휴식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이에 병의협 관계자는 “봉직의의 최장 연속 근무시간 평균이 34시간을 넘는다는 것은 24시간 연속 근무를 하고 나서도, 휴식 시간 없이 다음 날의 정규 근무를 마쳐야만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이는 심각한 노동력 착취이자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일반적으로 시간 외 수당은 통상임금에 50%를 더해 지급해야 하지만, 규정대로 수당을 받는 봉직의는 거의 없고, 오히려 야간 당직을 하고도 아예 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16.31%나 있었다. On-call에 대한 보상 역시 빈약해 일별로 일정한 금액을 받는 경우는 8%, 병원에 나갔을 때만 받는 경우 30%, 전혀 받지 못하는 경우도 61%에 달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 경기메디뉴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 경기메디뉴스

이쯤 되니 적정 근무시간과 휴식, 근로에 대한 합당한 보상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봉직의의 현실에 측은지심마저 들 지경인 가운데, ‘대신 휴가라도 잘 챙겨주겠지’ 하는 일말의 기대조차 산산조각 내는 결과가 이어졌다.

근로기준법상 1년 미만 근로자라도 최대 11일까지 연차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봉직의들은 1년에 평균 9일의 휴가 사용조차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44.8%가 그렇지 못하다고 답해, 근로기준법에서 보장하는 휴가 일수에 못 미치는 휴가마저도 눈치를 보며 사용 중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더해 환자의 폭행이나 폭언 등 신체·정신적 위협으로부터 의사를 보호하지 못하는 진료환경도 봉직의들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 설문조사에 응한 봉직의 중 67.5%는 근무하는 동안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위협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같은 위협에 대해 의료기관 측이 적극적으로 의사 보호에 나서기보다는 수수방관하거나 오히려 환자 측에 사과하도록 강요한 경우가 50%에 달한다는 점이다.

봉직의 E씨는 “수많은 봉직의가 법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봉직의들의 잦은 이직이나 의료기관의 인력난도 결국은 이 같은 고질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봉직의는 “봉직의의 권익과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과 관심이 절실하다”면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저수가 등 의료계의 근본적인 문제들과 얽혀있는 만큼 특정 직역의 문제로 치부할 게 아니라 의료계 공통의 과제로 인식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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