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8일 ‘대리처방 금지법’ 시행,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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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대리처방 금지법’ 시행, 무엇이 문제인가?
  • 이동욱 경기도의사회 회장
  • 승인 2020.02.0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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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현장 내 실랑이로 인한 혼란 우려
의사 형사처벌은 가벌성에 비해 과한 처벌
이동욱 경기도의사회 회장
이동욱 경기도의사회 회장

‘대리처방 금지법’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사람이 먼저’라는 더불어민주당 모 의원의 대표발의로 2월 28일부터 대리처방 개정 의료법이 적용된다.

지방 출장 중인 남편을 대신해 아내가 병원에 가서 남편이 기존에 먹던 고혈압약 처방을 요구하고 의사가 이를 들어주면 그 의사는 징역 1년 이하의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 ‘대리처방 금지법’의 주요 골자이다.

그런데 대리처방 금지가 과연 사람을 먼저 생각한 법안일지는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입으로는 ‘사람이 먼저’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법으로 국민 처벌을 먼저 생각하는 ‘형사처벌 우선주의’, ‘형사처벌 만능주의’ 국가를 만들었다.

기존에는 의료법 조항에 대리처방이 가능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출장 중인 남편을 대신해 아내가 대리처방을 받는 사례도 흔했고 형사처벌 걱정을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2월 28일부터 적용될 개정 의료법에는 대리처방 가능 사유에 대해 ‘환자의 의식이 없거나 거동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라고 분명하게 못 박았다. 멀리 출장 중인 남편은 대리처방 가능 사유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아내의 대리처방 요구는 불법이 되는 것이고, 이러한 사항을 누군가 고발한다면 처벌이 불가피하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는 고혈압, 당뇨 등의 사유로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국민으로서는 당장 현실에서 불편함을 느끼게 될 법이 시행을 앞둔 것이다.

남편이 멀리 출장을 갔는데 먹던 약이 떨어졌다는 아내의 하소연과 사정은 딱하지만, 대리처방 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라는 무시무시한 형사처벌을 받게 되니 부탁을 들어주기 어렵다는 의사의 설명, 하루에도 수차례 벌어질 실랑이로 혼란스러울 의료현장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필자는 실제 현장에서 진료하는 경기도의사회 회원들의 의견도 들어보았다. 대리처방을 놓고 ‘환자의 안전을 위해 절대 안 된다’는 의견과 ‘진료실 현실을 도외시한 법’이라는 의견 등 회원들 사이에서도 찬반 여론이 분분했다.

대리처방 불평 민원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대리처방 금지’ 자체에 대한 찬반 의견과 ‘대리처방 금지에 대한 의사 형사처벌’에 대한 찬반 의견으로 나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대리처방 금지 자체에 대한 논란은 회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서 경기도의사회 대표 입장을 정하기 어렵지만, 대리처방 금지에 대한 의사 형사처벌은 회원 대부분이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고 있어 경기도의사회가 회원들을 위해 입장 정리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도 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부는 유독 의료계에만 ‘사회주의’, ‘관치주의’를 대입하며 진료실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사안에 대해서도 형사처벌로 다스리며 억압하고 통제해왔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고 결국 국민의 피해로 이어진다.

설령 출장 중인 남편의 고혈압약이 떨어졌으니 대신 처방 좀 받게 해달라는 아내의 요구가 딱해 의사가 이를 들어주었다고 한들 그게 형사 전과자로 만들 만큼 가벌성 있는 행동인가?

피치 못할 사정에 한한 대리처방 찬반은 우리 회원들 사이에서조차 의견이 분분하니 사회의 판단 영역으로 남겨두고, 최소한 해당 의료법 위반 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형사처벌로 전과자 의사를 양산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의료법을 들여다보면 사소한 문제에도 형사처벌을 남발해 전과자 의사를 만드는 경우가 빈번하다. 진정 사람이 먼저인 나라를 만들고자 한다면 형사처벌이 아닌 과태료 처분으로 법을 개정해 전과자 양산을 막아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탁상공론으로 형사처벌을 남발하는 수많은 입법은 반드시 지양돼야 하고, 국민에 대한 형사처벌은 입법 시 가벌성 여부를 신중히 판단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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